새앙철 지붕 위로 쏟아지는 쇠못이여
쇠못 같은 빗줄기여
내 어린 날 지새우던 한밤이 아니래도 놀다 가거라
니 맘 내 다 안다
니 맘 내 다 안다
내 어린날 첫사랑 몸져눕던 담요 짝 잔디밭에 가서
잠시 놀다 오너라
낙숫물 소리로 흐느끼는
니 맘 내 자알 안다
니 맘 내 자알 안다
풀밭에 떨어지면
풀들과 친해지는 물방울같이
그대와 나는 친해졌나니
머언 산 바라보며
우리는 노오란 저녁해를 서로 나누어 가졌나니
내가 찾아가는 곳은 그대의 무덤
빈 하늘 가득히 비가 몰려와
눈알을 매웁게 하나니
바람이여 네가
웃으며
내게로 달려왔을 때
나무는
가장 깊숙한 빈터에서
흡족한 얼굴을 밝힌다
네 지순한 손길이
내 몸을 열어놓을 때
나는 낮은 움직임
바다 밑으로 손을 펴
눈먼 이의 눈먼 가슴을 더욱 가라앉힌다
지난해의 빗물에 녹이 슨 꽃이 다시 녹슬기 시작한다면
바라보다가 녹이 되어 떨어진 당신의 눈은
향기가 소모된 나무껍질일 것이다
다시 녹슬은 꽃이 우수수 진다면
문질러보다가 분질러진 당신의 손은
참혹한 덩어리일 것이다
빗줄기들이 유리에 부딪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다면
당신은 귓속에 병마개를 틀어막고 들어야 할 것이다
비가 내리는 동안 당신의 시간이 멈춘다면
시간은 죽어 숨소리를 그칠 것이다
한없이 어루만지는 부드러움이 되는 당신의 두 팔을 받으며 편안히 눕는다. 당신의 마음은 나의 옷, 포근한 온기를 온몸에 감고 잠이 든다. 당신의 애정은 푸른 밥, 나의 소화기관은 하루종일 꽃망울을 벌여 일초일초(一抄一抄) 꽃피워낸다. 태양이 한 아이의 손바닥에 가지런히 씨앗을 올려놓고 웃음 짓듯이 당신의 눈길이 내 눈을 묶을 때 나는 순한 물이 된다. 속삭이고 싶다 속삭이고 싶다. 지나가는 바람에게 마음을 주고 싶다. 형태 없는 가을에, 내 손에 와 닿는 것들은 순한 물이 되어 고인다. 나의 틀은 좁은 마당에서도 알맞다. 당신의 눈이 내 눈에 고이고, 나는 잘 길들여진 어린나무, 친근한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고 싶다. 오래오래 헤매고 싶다. 형태 없는 가을에 사면이 하얗게 칠해진 마당에서 나는 순한 물이 되어 고인다. 당신의 살 위에 내 살을 댄 채.
비 내린 풀밭이 파란 건
풀잎 속으로 몰려가는 푸른 힘이 있기 때문이다
풀밭에 힘을 주는 푸른 손목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풀밭이 노오랗게 시드는 건
힘을 주던 손목이 부러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사실을 그대에게 보일 것이다
우리들의 몸속에서도 힘을 주던 손목이
사나워져 가고 있다고
풀밭과 세 사나이는 하나다
세 명의 사나이가 풀밭을 지나가면
풀밭과 세 사나이는 둘로 격리된다
그것은 튼튼하고 확실한 형태였다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 속에서는 분질러진 마음이 오래오래 남아 있었다
그것은 튼튼하고 확실한 형태였다
나는 그대에게 보여줄 것이다
균열된 유리창을 통하여
풀밭을 바라보는 세 가지 마음을
튼튼하고 확실한 형태를
나는 그대에게 보여줄 것이다
비 내린 풀밭으로 걸어나가는 세 개의 발이
갇혀가다가 도망쳐나오는 시간의 궤적과 공간을
그 튼튼하고 확실한 형태를
그믐밤 헛간에 빠졌을 때다. 나는 부러진 도끼처럼 뒹굴었다. 완강한 어둠 속에서 흰 팔의 소리들이 나를 불러내고 있었다. 다 탄 심지처럼 겨울나무들이 몰려오고 얼어붙은 땅바닥에서 바람소리들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흰 팔의 소리들이 뼈를 쪼개고 있었다. 소리들은 찢어진 살을 만지고 있었다. 바늘을 삼킨 위독한 나를 부르며 잃어버린 나라에서도 불타오르던 암석들을 데려오고 있었다. 물이 엎질러진 마당구석에서 아이들은 얼굴을 비춰보며 놀고, 나는 얼음이 갈라지는 헛간의 빙벽에 매달려 있었다. 이번에는 소리들이 뼈를 부딪치고 있었다. 소리들은 바다로 기울어져 가고, 내 안에서는 하얗게 고함치며 갈라지는 뼈가 있었다. 그러자 바람이 메마른 나뭇가지의 살을 씻어내리다 실신하는 바다에서 흰 팔의 소리들이 다시 들려오고 있었다
** 비를 한두방울 맞을 땐 안맞으려고 애쓴다.
혹시 머리가 벗겨지거나 산성비에 옷이 삭아버릴까 염려하는 까닭이다.
조금 더 맞아서 대강 옷이 축축해지면 비 피하기를 그만두고 내버려둔다.
조병화님의 싯구, 포기한다는 것은 자유로와진다는 거다,라고 했던가.
정말 자유롭다.
비, 그까짓 게 무언데 안맞으려고 애쓴다는 말인가.
우리는 삶 속에서 괜한 것에 애쓰고 애닳아 한다.
내 차에 있던 우산이 없어졌다.
아마도 어느 날 아들에게 비맞지말라고 준 뒤 없어진 것 같다.
어제 삼단우산을 아들에게 사주었는데 그래도 내 우산이 없다.
머리가 벗겨지면 어쩌지.....옷이 삭아버리면 어쩌지......
걱정이 앞선다, 비를 철철 맞으며......
*** 고병희가 부르는 '유리창엔 비'를 좋아한다.
고병희의 맑은 목소리도 좋지만 그 옛날 경주에서의 추억때문이다.
사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지금의 직장으로 옮길 때
바로 이 노래가 막 히트될 때였다.
업무를 정리하기 위해 자동차회사를 다녀오는 길에 울산 바닷가에서
이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주엔 지금의 직장에 다니게 되었고
만호리 바닷가의 토마스집에서 며칠을 묵게 되었다.
비오는 날, 유리창엔 비를 듣고 싶고
그러자면 토마스네 집이 생각난다.
**** 비가 개면 나타나는 일곱색깔 무지개.
김수철이 부르는 노래이다.
대개 일곱색깔 무지개는 희망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비는 절망일까, 고난일까,환난일까.
노아의 방주가 환난을 대비해 만들었으니 환난이라고 봐야 하나.
악함이 넘치는 세상을 쓸어버리려는 계획은
물이 바다덮음같이 세상을 덮었고
물로써 죄를 씻어냈다.
하지만 천사옆에는 늘 사탄도 함께 있으므로
지금껏 공존하는 까닭에, 그래서 씻어내고 씻어내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게다. 저 사탄의 그림자.
천국에 가도 천사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는 바이러스같은 사탄이
큰 바가지에 물 가득 담아 장난질 치고 있다.
낄낄낄 새까만 이 드러내고 웃고 있다.
***** 테헤란에서 반달아바스까지 사막을 종단했을 때 본 풍경이다.
물도 없고 마른 풀들만 갈급해하는
황량한 땅에 비라도 시원하게 내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도하지만
비는 그저 일년에 한번정도 내리는지 사막에는 키작은 누런 풀들 뿐이다.
비 한번 내리면 그 한모금으로도 씨앗은 발아하고
딱 고만큼만 키가 자라고 이내 말라 죽는다.
만약 바가지 가지고 장난치는 이가 있다면 잠시 넓은 사막에 미친 듯 물을 퍼담고
정말 물이 바다덮음같이 사막을 덮어만 준다면
물은 신이 준 최고의 선물이 될 게다.
사막, 여기에 필요한 것은 풍족한 물이니 물은 곧 희망인 셈이다.
정말 물이 부족한 척박한 땅에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희망을 품고,
******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어보았나.
심장으로 떨어지는 낙숫물은 어떻고
불어터진 심장으로
아직도 낙숫물 떨어진다.
******* 천둥번개가 치면
힘이 난다.
대체로 여자들은 천둥번개를 무서워 하는 척 하므로
없던 힘이 불끈 솟는다.
뭐가 무섭다고 그래,
하주 자기도 무서우면서
천둥번개가 좀더 세게 쳐야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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