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철
말조심에 대하여[오승강]
나는 말하기가 두려워졌다
말 한마디로 절교를 당한 뒤로는
겨울이 되어도 춥다고 말하지 않는다
결코 더워도 덥다고 말하지 않는다
친구를 만나서도
어떻게 말할까고 더듬거리고
잘못이나 있는 듯 풀이 죽는다
그러는 나를 친구들은
건방지다고
무슨 유세나 진 듯 하다고
하나 둘 나를 떠나가고
마침내 식구들에게도 따돌려
방 한칸을 따로 쓰게 되었다
이 나이에 아무에게나
내 이 고통을 말할 수 없고
자꾸 더듬거리기만 하는 입술
나는 이제 말하기가 두려워졌다.
* 말 한마디가 주는 상처는 아주 깊다.
아마도 이번 추석에 가족들과 모처럼 모였는데 무의식에 쌓여 있던 해묵은 감정을
가벼운 말 한마디에 담아 가족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을지도 모른다.
가족간에도 따돌려지고 소외되어질 때 그 상처 또한 아주 깊다.
상처가 전혀 없었던 유쾌한 추석들이 되었기를 바라며
그래서 가족중에는 적어도 한두명의 개그맨이 있어야 모임이 즐거워진다.
시인 오승강은 말 한마디의 상처가 아주 깊었는지
'귀농'이라는 시를 마지막편에 올리고 진짜 귀농을 해버렸다.
지금도 더듬거리며 말하기가 두려울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의 초등학교 제자들이 블로그에 선생님에 대한 기억들을 떠올리는 걸 보면
좋은 선생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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