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느릅나무가 있는 카페[송종규]

JOOFEM 2007. 12. 10. 20:31

 

                                    deoinga님의 블로그에서 퍼온 그림.

 

 

 

 

느릅나무가 있는 카페[송종규]

 

 

 

 

저 의자는 오래 전 당신이 비워 둔 것이다
이 컵의 자국은 오래 전 당신이 찍은 얼룩이다
다소 느슨하게 돌아가는 벽시계는 오래 전 당신이 벗어둔 외투,

고무나무와 아레카 야자가 있는 창가에 우두커니 당신은 서 있다

바람이 불거나 해가 지는 것처럼 아주
일상적인 시간이 태연한 척 이곳을 지나가지만
새들이 끼룩거리거나, 누군가 무심하게 창문을 여닫는 것처럼 아주
사소한 사건들이 문밖을 기웃거리기도 하지만
수많은 당신이 앉았던 의자와 컵에 찍힌
입술과 손가락의 지문, 그리고
헐거운 외투
적요하고 고즈넉한 이것은
느리고 게으른 삶이 부려놓고 간 농담 같기도 하다

이미 오래 전에 당신과 나는
무한정의 햇빛과 공기를 나누어 마셨다
그러나
그 긴 세월 내 창가에 우두커니 서 있는 당신을
신발을 신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을 때마다 손바닥 가득 만져지는
당신을
나는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하나

손가락 꼽으며 기다리던
빈 의자와 빈 컵 그리고 소복한
날짜들


<웹진 시인광장> 2007, 겨울

 

 

 

 

 

 

 

 

* 아내가 뒤늦게 대학원 공부를 한다고 식구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서 한 이년간 혼자 천안에서 살았다.

   밤이면 적적해서 카페를 찾았다. 이름은 필라델피아.

   처음엔 동료들과 술마시러 드나들다 마담과 조금씩 친분이 쌓이고 대화하다 보니 통하는 것도 있고

   그래서 나중엔 아예 친구처럼 대화하게 되었다.

   우습기도 하겠지만 술집여자(분명 그녀는 술을 팔았으므로)와 문학얘기를 주로 하였다.

   나중엔 술을 즐기지 않는 나는 커피만 마시러 가도 전혀 싫어하는 내색이 없었다.

   많은 대화를 통해 문학적인 지식을 쌓았는데 어느 날, 저 이혼했어요. 하는 거다.

   헤어져 산지는 꽤 되었는데 무엇이 분노케 했는지 이혼은 안한다고 하더니 이혼했다는 거다.

   그리고 며칠 뒤 그녀는 서둘러 카페를 정리하고 사라져버렸다.

   누군가 그 카페를 인수받아 분위기는 거의 그대로이지만 그녀가 없는 카페는 이미 필라델피아가 아닌 거다.

   장사 안되는 텅 빈 카페를 참 많이도 지켜주고 그녀의 마음도 지켜 주었는데

   어느 하늘 아래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전혀 술장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미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