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폭설[오탁번]

JOOFEM 2007. 12. 3. 22:29

 

 

 

 

 

폭설暴雪[오탁번]

 

 

 

 

삼동三冬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南道 땅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또 자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내렸다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 워메, 지랄나부렀소잉!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

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그날 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

뒷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

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보일 뿐

온 천지天地가 흰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느님이 행성行星만한 떡시루를 뒤엎은 듯

축사 지붕도 폭삭 무너져내렸다

 

좆심 뚝심 다 좋은 이장은

윗목에 놓인 뒷물대야를 내동댕이치며

우주宇宙의 미아迷兒가 된 듯 울부짖었다

― 주민 여러분! 워따. 귀신 곡하겠당께!

인자 우리 동네 몽땅 좆돼버렸쇼잉!

 

<시향> 2006년  봄호

 

 

 

 

 

 

 

 

* 오탁번시인은 상스런 말을 전혀 할 것 같지 않은데 시에선 저리도 상스럽게 말씀하신다.

  나는 저런 상스런 말이나 욕을 한 적이 없다.

  내게 있어서 최대의 욕은 '저런 거지같은 놈!'이다.

  앞으로 내게 거지같은 놈 소리를 들으면 무지막지한 욕설임을 기억하라.

  아이들한테 에잇, 쌍시옷비읍!이라고 하면 금방 알아듣고 하하거린다.

  아빠, 왜 욕을 하고 그러세요.

  뭐, 쌍시옷비읍이 어때서.

 

  저렇게 주옥같은 시를,시어를 구사할 수 있는 나이에는

  '주옥같은'을 좀더 빠르게 읽어도 흉이 잡히지 않는다.

  그만한 경지에 도달했기때문일 게다.

 

  지금은 욕설이든 폭설이든

  그 안에 갇혀 백일이고 백년이고

  딱 버틸 수 있는만큼만 *(?)돼버리고 싶다.

  아직 난 주옥같은 단어를 구사할 나이가 아닌데도......

 

 

 

 

 

 

 

 

 

 

 요즘 그 그지같은 놈과 연애중인데 아빠가 욕하면 속상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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