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은미
그 돌[황동규]
투명해진다. 하늘이 탁 트이고 딱지 앉았던 벌레 구
멍 터지고
남은 살 자잘히 바스러지고 잎맥만 선명히 남은 이
파리
늦가을 바람을 그대로 관통시킨다.
비로소 앞뒤 가리지 않게 되었다.
산책길에 언제부터인가 팽개쳐 있는 돌
문득 눈에 밟혀 길섶 잇몸에 박아준다.
덮을 풀 한 포기 마른 나뭇잎 한 장 없이
한데 잠든 돌 꿈을 꾼 아침
혹시 딴 데로 옮겨줄까 다가가니
그는 하얀 서리를 입고 앉아 있었다.
괜찮다고.
하루 한 차례 볕도 든다고. 이처럼
마음 한가운데가 밑도 끝도 없이 내려앉는 절기엔
화사한 옷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앞의 햇볕 가리지 말아달라고.*
* 그 돌이 디오게네스를 기억하고 있었던가?
꽃의 고요[황동규시집],문학과 지성사
* 드넓은 바닷가에는 셀 수 없는 모래알갱이가 잔뜩 쌓여 있다.
이 작은 모래알갱이중에 햇볕을 쬐는 건 얼마나 될까,
반짝일 수 있는 것, 몇 안된다.
밑에 깔린 모래알갱이중에는 따듯함을 느끼는 것도 있겠지만
가려지지 않은 햇볕을 온전히 받는 행복을 누리는 건 몇 안된다.
하얀 서리가 내려도 괜찮다고 마음 든든해 한다.
믿는 구석이 있는 까닭이다.
햇볕이 가려지지 않는다는 걸 아는 까닭이다.
팽개쳐진 게 절대 아니라는 걸, 거룩하다는 걸 잘 아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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