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와 이슬 [오봉옥]
거미의 적은 이슬이다
끈끈이 점액질로 이루어진 집은
이슬의 발바닥이 닿는 순간
스르륵 녹기 시작한다
눅눅해진 거미줄로는
그 무엇도 붙들 수 없어
허공을 베어 먹어야만 한다
거미는 숙명적으로
곡마단의 곡예사가 된다
가느다란 줄에 떼지어 매달리는 이슬을
곡예사가 아니고선
다 털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슬의 살은 공처럼 부드럽다
곡예사는 이슬을 발가락 끝으로 통
통 퉁겨보기도 하고
입으로 빨아들여 농구공처럼 톡
톡 내쏘기도 한다
작은 물방울들을 눈덩이처럼 굴려
크게 하나로 만들어놓은 뒤
새총을 쏘듯이 거미줄을 당겼다 놓아
다시금 새하얀 구슬들로 쏟아지게도 한다
이슬을 다 걷은 거미는
괜시리 한번 거미줄을 튕겨본다
오늘도 바람이 불면 그물망 한 가닥
기둥처럼 붙들고 흔들릴 것이다
그 뿐인가,
팽팽한 줄이 퍼덕이는 순간
회심의 미소를 짓기도 할 것이다
* 세상 모든 일은 마치 게임과 같다.
거미가 이슬과 싸워서 이기거나, 지거나,일 것이다.
이겼을 때의 희열을 잊지 못하고 흰 이를 드러내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 건
그것 때문에 생의 의미가 있는 것이어서인지도 모른다.
농구경기에서는 마지막 사쿼터에서 일분을 남겨놓고 머리싸움을 할 때
흥분과 몰입에 빠져든다.
마지막 그물을 가를 때 손맛과 함께 승리의 여신을 만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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