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바닥[문태준]

JOOFEM 2008. 11. 24. 21:00

 

 

 

 

 

 

바닥[문태준]

 

 

 

 

가을에는 바닥이 잘 보인다

그대를 사랑했으나 다 옛일이 되었다

나는 홀로 의자에 앉아

산 밑 뒤뜰에 가랑잎 지는 걸 보고 있다

우수수 떨어지는 가랑잎

바람이 있고 나는 눈을 감는다

떨어지는 가랑잎이

아직 매달린 가랑잎에게

그대가 나에게

몸이 몸을 만질 때

숨결이 숨결을 스칠 때

스쳐서 비로소 생겨나는 소리

그대가 나를 받아주었듯

누군가 받아주어서 생겨나는 소리

가랑잎이 지는데

땅바닥이 받아주는 굵은 빗소리 같다

후두둑 후두둑 듣는 빗소리가

공중에 무수히 생겨난다

저 소리를 사랑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다 옛일이 되었다

가을에는 공중에도 바닥이 있다

 

 

 

 

 

 

* 가을의 바닥에 우리는 서 있다.

세월이 저 혼자 흘러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한 때 공중에서 영화를 누렸던 적이 있었다.

다 헛된 일인 줄 알기는 하였지만 이제 바닥에서 옛일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바람이 가랑잎을 희롱할 때도

우리는 그게 영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다.

그게 옛일이 된 지금 나는 바닥에 누워 여기가 바닥임을 비로소 안다.

하늘이 저리도 멀게 느껴진다.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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