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 경전[이덕규]
어쩌면 이렇게도
불경스런 생각들을 싹싹 핥아서
깨끗이 비워놨을까요
볕 좋은 절집 뜨락에
가부좌 튼 개밥그릇 하나
고요히 반짝입니다
단단하게 박힌
금강(金剛) 말뚝에 묶여 무심히
먼 산을 바라보다가 어슬렁 일어나
앞발로 굴리고 밟고
으르렁 그르렁 물어 뜯다가
끌어안고 뒹굴다 찌그러진,
어느 경지에 이르면
저렇게 제 밥그릇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을까요
테두리에
잘근잘근 씹어 외운
이빨 경전이 시리게 촘촘히
박혀있는 , 그 경전
꼼꼼히 읽어내려 가다보면
어느 대목에선가
할 일 없으면
가서 <밥 그릇이나 씻어라>* 그러는
*조주선사와 어느 학인과의 선문답
* 인생의 목적은 두가지다. 사랑 그리고 돈이다.
어느 경지이고 밥그릇싸움이란 것이 있다.
그 바닥에서 경지에 도달하더라도 더 경지를 넓히기 위해서는 피튀기는 밥그릇싸움을 하기 마련이다.
밥그릇을 위해 남보다 더 공부해서 서울대 가겠다고 사당오락을 주문처럼 외우고
밥그릇을 위해 남 밟고 올라 서려고 권모술수를 세상사는 법으로 알고
결국 그 밥그릇이라는 게 나, 잘 먹고 잘 살자는 거다.
그런데 그 밥이라는 놈이 다름아닌 사랑과 같은 거라서
사랑을 담는 그릇은 평생 가지고 다녀야 하는 밥그릇인 거다.
잘근잘근 씹고, 끌어안고, 뒹굴리고, 찌그러뜨리기도 하는 밥그릇은
그렇게 한평생을 가지고 다니며 나를 먹이는 게 아닌가.
결국 그 밥그릇이라는 게 나, 잘 먹이고 잘 살게 하는 사랑인 거다.
결론은 버킹검도 아니고 밥그릇이 그러하니 밥그릇 잘 씻고 살라는 말이다.
내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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