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11월 [나희덕]

JOOFEM 2009. 11. 8. 20:23

 

 

 

 

 

 

11월 [나희덕]

 

 

 


바람은 마지막 잎새마저 뜯어 달아난다
그러나 세상에 남겨진 자비에 대하여
나무는 눈물 흘리며 감사한다

길가의 풀들을 더럽히며 빗줄기가 지나간다
희미한 햇살이라도 잠시 들면
거리마다 풀들이 상처를 널어 말리고 있다

낮도 저녁도 아닌 시간에,
가을도 겨울도 아닌 계절에,
모든 것은 예고에 불과한 고통일 뿐

이제 겨울이 다가오고 있지만
모든 것은 겨울을 이길 만한 눈동자들이다

 

 

 

 



* 일년중 가장 잔인한 달은 2월과 11월이다.

2월은 남들보다 이,삼일이 작아 모자란듯 보이고 겨울도 아니고 봄도 아닌 것이 어정쩡하고

11월은 남들 다 쉴 때 쉬지도 못하고 한달을 꽉 채워서 일을 해야하니 잔인하고 가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닌 것이

이 또한 어정쩡하고, 그래서 잔인한 달이다.

가을이 빨리 가라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더니 나무마다 낙엽을 떨구어서 을씨년스러운 거리를 만들어버렸다.

바람 한 점에 떨어지는 나뭇잎이 내 무릎에 앉아서 머언 먼 옛날의 어느 인연을 생각케 하는 가을날이었다.

버석거리는 소리와 함께 가을이 갈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