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이제 바퀴를 보면 브레이크 달고 싶다[윤재철]

JOOFEM 2009. 11. 15. 19:59

                                                                                                                                                               오치균

 

 

 

 

 

이제 바퀴를 보면 브레이크 달고 싶다[윤재철]

 

 

 

 

바퀴는 몰라

지금 산수유가 피었는지

북쪽 산기슭 진달래가 피었는지

뒤울안 회나무 가지

휘파람새가 울다 가는지

바퀴는 몰라 저 들판

노란 꾀꼬리가 왜 급히 날아가는지

 

바퀴는 모른다네

내가 우는지 마는지

누구를 어떻게

그리워하는지 마는지

그러면서 내가 얼마나 고독한지

바퀴는 모른다네

 

바퀴는 몰라

하루 일 마치고 해질녘

막걸리 한 잔에 붉게 취해

돌아오는 원둑길 풀밭

다 먹은 점심 도시락가방 베개 하여

시인도 눕고 선생도 눕고 추장도 누워

 

노을 지는 하늘에 검붉게 물든 새털구름

먼 허공에 눈길 던지며

입에는 삘기 하나 뽑아 물었을까

빙글빙글 토끼풀 하나 돌리고 있었을까

하루해가 지는 저수지길을

바퀴는 몰라

 

이제 바퀴를 보면 브레이크 달고 싶다

이제 너무 오래 달려오지 않았나

 

 

 

 

 

 

 

 

* 평지를 달리는 바퀴는 땅이 주는 마찰력때문에 동력을 주어야 달릴 수 있다.

경사진 길은 바퀴에게 굳이 동력을 주지 않아도 굴러가게 되어 있다.

인생의 정오(noon of life)를 지나고 나면 하염없이 내리막길이다.

산수유를 돌아볼 틈도 없고 꾀꼬리가 급히 날아가는 것을 따질 겨를이 없다.

짐스러운 것들에 치여 그저 내리막길의 종점을 향해 내달릴 뿐이다.

살다보면 때로는 대학입시를 실패해 재수를 할 때도 있고

군대 다녀와서 복학준비한다고 한 학기 쉴 때도 있고

입사시험에 매번 떨어져 쉴 때도 있고

아니면 회사 다니다가 명퇴니 희망퇴직이니 해서 잠깐 쉴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런데 난 쉼없이 달려오기만 했지 정작 단 한달도 쉬어 본 적이 없다.

이 시를 읽으면서 정말 나에게 필요한 건 브레이크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내리막길이라도 가끔은 브레이크를 밟으며

좌우를 살필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시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과 꽃 같은 기억[정숙지]  (0) 2009.11.25
가슴을 바꾸다[임현정]  (0) 2009.11.17
11월 [나희덕]  (0) 2009.11.08
나는 에르덴 조 사원에 없다[고형렬]  (0) 2009.11.07
보석[장인수]  (0) 2009.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