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문
가슴을 바꾸다[임현정]
한복 저고리를 늘리러 간 길
젖이 불어서 안 잠긴다는 말에
점원이 웃는다
요즘 사람들 젖이란 말 안 써요
뽀얀 젖비린내를 빠는
아기의 조그만 입술과
한 세상이 잠든
고요한 한낮과
아랫목 같은 더운 포옹이
그 말랑말랑한 말 속에 담겨 있는데
촌스럽다며
줄자로 재어준 가슴이라는 말
브래지어 안에 꽁꽁 숨은 그 말
한바탕 빨리고 나서 쭉 쭈그러진 젖통을
주워 담은 적이 없는 그 말
그 말로 바꿔달란다
저고리를 늘리러 갔다
젖 대신 가슴으로 바꿔 달다.
* 한 때 젖이 세상의 전부인 때가 있었다.
조그만 입술로 젖과 교감하면서 먹을 것과 사랑은 동등하다는 걸 알았다.
하긴 다 자라서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면 밥을 같이 먹으려 하지 않는다.
가끔 접대성으로 먹어주는 겉치레가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세상의 전부인 젖이 가벼운 존재로 변신하여 가슴이 되어버렸다.
요즘은 째고 빼고 늘리고 불리고 별짓을 다해서 쭈쭈빵빵을 만드는지 모르겠으나
당췌 요기는 안되고 눈요기만 되는 터라
그저 말랑말랑한 정구공같은 젖이 그립기만 하다.
현대인은 가슴도 커야하고 키도 커야하고 눈도 째져야 하고 얼굴도 준수해야 하고
스펙이 너무 많아.
내 모습 그대로, 자연스럽게 짜짜로니는 안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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