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두 입술이 내는 소리[강영은]

JOOFEM 2009. 12. 3. 21:27

 

                                                                                                                                        수암골에서

 

 

 

 

 

 

두 입술이 내는 소리[강영은]

 

 

 

 

 

 

 

강남역 지하도를 지나가는데

외국인 남녀가 껴안은 채 속삭이고 있다

쥬떼? 아니 쥬뗌므/쥬뗌프

뒤통수에 달라붙은 그 말을 붙들고 갸우뚱거리다

집에 와 인터넷을 검색을 한다

쥬뗌므, 쥬뎀브, 쥬뗌쁘, 쥬뗌프, 말꼬리가 4개다

서로 다른 말꼬리를 잡고보니

ㅁ, ㅂ, ㅃ, ㅍ, 다

ㅁ, ㅂ, ㅃ, ㅍ는 문창살을 빠져나가는

육면체의 공기방울

묵은 바람 끼 떠트리는 입술소리다

입술이 입술로 달려가 닿는 소리

플륫처럼 입술을 떨게 했던

풀입 입술을 조율하기도 했던 그 소리는

내가 맨 처음 입맞춤한

엄마, 압빠, 맘마, 젖내 나는 소리

자라면서 날마다 입 맞춘

바압~밥 소리다

 

 

오늘은 쥬뗌므에 입을 맞췄다

 

 

 

 

 

 

 

* 어린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발음이 'ㅁ'이다.

가장 하기 쉬운 발음이라는 거다.

그래서 처음으로 엄마, 마마, 마더,,,,, ㅁ으로 발음한다.

밥도 맘마라고 하는 건 그만큼 발음이 쉬운 까닭이다.

ㅁ은 만두속을 잘 오무려 만두피에 집어넣듯 하는 발음이고

ㅍ은 가슴속에 있는 것을 내뱉듯 하는 발음이다.

ㅁ은 내면의 세계로 침잠하는 것이고

ㅍ은 바깥세상으로 죄다 퍼주는 것이다.

ㅁ은 당신의 사랑을 내 안에 담아두는 것이고

ㅍ은 당신의 사랑을 돌려주는 거다.

그러니 쥬뗌므에 입을 맞추어야겠지.

ㅂ과 ㅃ은 그 중간이니 어정쩡한 거겠지.

 

러시아사람들은 찬바람이 내 안에 들어오는 게 싫어서 ㅍ발음을 많이 하는가보다.

후르시쵸프~, 고르바쵸프~, 프프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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