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싶은 날[오탁번]
앵두나무 꽃그늘에서
벌떼들이 닝닝 날면
앵두가 다람다람 열리고
앞산의 다래나무가
호랑나비 날갯짓에 꽃술을 털면
아기 다래가 앙글앙글 웃는다
태초 후
45억년이 지난 어느 날
다랑논에서 올벼가 익어갈 때
청개구리의 젖은 눈알과
알밴 메뚜기의 볼때기에
저녁노을 간지럽다
된장독에 쉬 슬어놓고
앞다리 싹싹 비벼대는 파리도
거미줄 쳐놓고
한나절 그냥 기다리는
굴뚝빛 왕거미도
다 사랑하고 싶은 날
* 오탁번선생님의 한정판 시집을 한권 받았다.
천권중에 내가받은 사백사십세번째 책.
올봄에 대학로 주점에서 시사랑회원 틈에 앉으셔서 한마디 말씀도 안하시곤 맑은 눈을 굴리시는 모습에서
우리들에게 무척 많은 말씀을 하고 싶어하시는 걸 알았다.
한평생을 이 한권의 시집으로 정리하신 셈이니 자서전과도 같으리라.
제목처럼이나 시를 읽는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고 싶은 날을 맞게 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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