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사랑하고 싶은 날[오탁번]

JOOFEM 2009. 12. 25. 17:24

 

 

 

 

 

 

 

 

 

 

사랑하고 싶은 날[오탁번]

 

 

 

 

앵두나무 꽃그늘에서

벌떼들이 닝닝 날면

앵두가 다람다람 열리고

앞산의 다래나무가

호랑나비 날갯짓에 꽃술을 털면

아기 다래가 앙글앙글 웃는다

 

태초 후

45억년이 지난 어느 날

다랑논에서 올벼가 익어갈 때

청개구리의 젖은 눈알과

알밴 메뚜기의 볼때기에

저녁노을 간지럽다

 

된장독에 쉬 슬어놓고

앞다리 싹싹 비벼대는 파리도

거미줄 쳐놓고

한나절 그냥 기다리는

굴뚝빛 왕거미도

다 사랑하고 싶은 날

 

 

 

 

 

 

 

* 오탁번선생님의 한정판 시집을 한권 받았다.

천권중에 내가받은 사백사십세번째 책.

올봄에 대학로 주점에서 시사랑회원 틈에 앉으셔서 한마디 말씀도 안하시곤 맑은 눈을 굴리시는 모습에서

우리들에게 무척 많은 말씀을 하고 싶어하시는 걸 알았다.

한평생을 이 한권의 시집으로 정리하신 셈이니 자서전과도 같으리라.

제목처럼이나 시를 읽는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고 싶은 날을 맞게 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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