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그런 날 있었는지[김명기]

JOOFEM 2010. 6. 8. 23:46

 

 

 

 

 

 

 

그런 날 있었는지[김명기]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

가급적 아주 먼 길을 돌아가 본 적 있는지

그렇게 도착한 집 앞을

내 집이 아닌 듯 그냥 지나쳐 본 적 있는지

길은 마음을 잃어

그런 날은 내가 아닌 것

바람이 불었는지 비가 내렸는지

꽃핀 날이었는지

검불들이 아무렇게나 거리를 뒹굴고 있었는지

마음을 다 놓쳐버린 길 위에서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날

숨쉬는 것조차 성가신 날

흐린 달빛 아래였는지

붉은 가로등 아래였는지

훔치지 않은 눈물이 발등 위로 떨어지고

그 사이 다시 집 앞을 지나치고

당신도 그런 날 있었는지

 

 

 

 

 

 

 

 

* 가족관계란 파르르 떨리는 물방울의 표면장력 같은 거다.

가족관계가 깨지면 집은 더이상 가정이 아니고 건물이 될 뿐이다.

믿었던 가족이 더이상 믿을 수 없을 때에는 집에 들어가기가 싫을 게다.

요즘 이웃나라 일본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그렇고 노숙자 내지는 박스족이 너무 많아졌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집을 뛰쳐나왔는지는 몰라도 역이란 역은 다 점령하고

지린내와 더러움 속에서 무질서의 극치를 달린다.

밤이면 이들의 천국이 된다.

멀쩡한 젊은이도 있다는 게 더 큰 충격이다.

믿을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가족이 많으면 많을수록 살만한 세상인데 이들에겐 그렇지가 않은 게다.

 

나는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다리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씀을 듣고 그게 정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집을 나가야 되는건가, 혼란을 겪기도 했다.

조금 더 커서야 농담이란 걸 알았다. 너무 순진했나......

나중에 우리 아이들에게 똑같이 농담을 했건만 셋 다 믿지않아서 싱겁게 끝났는데

나만 당한 것(?) 같아 좀 억울했다.ㅎㅎ

 

내 집을 내 집으로 알고 지내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부모가 있고 자식이 있고 아내가 있고 남편이 있고  형제자매가 있는

내 집은 얼마나 푸근하고 따뜻한가.

해가 지면 새들도 자기 둥지로 돌아가듯

사람도 해가 지면 돌아갈 내 집이 있어야 한다.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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