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 있었는지[김명기]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
가급적 아주 먼 길을 돌아가 본 적 있는지
그렇게 도착한 집 앞을
내 집이 아닌 듯 그냥 지나쳐 본 적 있는지
길은 마음을 잃어
그런 날은 내가 아닌 것
바람이 불었는지 비가 내렸는지
꽃핀 날이었는지
검불들이 아무렇게나 거리를 뒹굴고 있었는지
마음을 다 놓쳐버린 길 위에서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날
숨쉬는 것조차 성가신 날
흐린 달빛 아래였는지
붉은 가로등 아래였는지
훔치지 않은 눈물이 발등 위로 떨어지고
그 사이 다시 집 앞을 지나치고
당신도 그런 날 있었는지
* 가족관계란 파르르 떨리는 물방울의 표면장력 같은 거다.
가족관계가 깨지면 집은 더이상 가정이 아니고 건물이 될 뿐이다.
믿었던 가족이 더이상 믿을 수 없을 때에는 집에 들어가기가 싫을 게다.
요즘 이웃나라 일본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그렇고 노숙자 내지는 박스족이 너무 많아졌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집을 뛰쳐나왔는지는 몰라도 역이란 역은 다 점령하고
지린내와 더러움 속에서 무질서의 극치를 달린다.
밤이면 이들의 천국이 된다.
멀쩡한 젊은이도 있다는 게 더 큰 충격이다.
믿을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가족이 많으면 많을수록 살만한 세상인데 이들에겐 그렇지가 않은 게다.
나는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다리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씀을 듣고 그게 정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집을 나가야 되는건가, 혼란을 겪기도 했다.
조금 더 커서야 농담이란 걸 알았다. 너무 순진했나......
나중에 우리 아이들에게 똑같이 농담을 했건만 셋 다 믿지않아서 싱겁게 끝났는데
나만 당한 것(?) 같아 좀 억울했다.ㅎㅎ
내 집을 내 집으로 알고 지내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부모가 있고 자식이 있고 아내가 있고 남편이 있고 형제자매가 있는
내 집은 얼마나 푸근하고 따뜻한가.
해가 지면 새들도 자기 둥지로 돌아가듯
사람도 해가 지면 돌아갈 내 집이 있어야 한다.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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