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기도 [이영광]

JOOFEM 2013. 12. 8. 18:39

 

                                                                       마리오 쟈코멜리 ‘나에게는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없다’

 

 

 

 

 

기도 [이영광]

 

 

 

 

 

나의 기도는

기도하지 않는

기도이다

기도할 수 없는 기도이다

주저앉는 기도이다

뭉개지는 기도이다

사람의,

사람이 짓는

사람이 어쩔 수 있을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하여

기도는 말이 없다

언제나 경악보다 먼저 와서,

두려움보다 슬픔보다 분노보다 먼저 와서

두 손을 모으려 하는 나를

무슨 말을 떠올리려 하는 나를

단숨에 찔러버린다

허공을 쥐고

사지를 뒤틀면서

기도는 기도를 빼앗기고

꿈틀거리는 신음 하나를 입에 문다

분노가 되기 전에,

슬픔이 두려움이 경악이 되기 전에

전선같이 와서

침묵 하나로 뚫어버리는 것

더듬거리면서

내 기도는 언제나 기도 이전,

사람이 어쩔 수 없을 어쩔 수 있는 것에 대하여

경련하는 기도이다

모르는 기도이다

기도에 목졸려 나는 빈다

기도보다 먼저 온 기도에 꿰여

입속에서 목구멍 속에서

빌고 빈다

 

 

 

 

 

 

 

* 이영무축구감독이 차범근축구감독이 이끄는 팀과 맞붙으면 무슨 기도를 할까.

또 차범근축구감독은 무슨 기도를 할까.

자기 팀이 이기게 해달라고?

그런데 삼대빵으로 지고 있다면 뭐라고 기도를 할 것인가?

거칠게 태클하게 해달라고, 악으로 깡으로 공격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인가?

 

나의 팀을 이기게 해달라는 기도나

내가 한골을 넣을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은 기도가 아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이 축구경기를 이끌어달라는 기도 말고는 아무 것도 기도가 아니다.

 

자식이 눈 앞에서 죽어가는데 아비가 할 수 있는 기도가

자식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기도하는 것이라면 하느님은 응답하시는가?

물론 응답하신다. 자식을 죽게 하거나 살게 하거나 둘 중의 하나다.

그게 하느님의 뜻이고 응답이다. 죽게 하는 것, 또는 살게하는 것.

 

절대자인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고 기복적인 것이라면

때로 그 기도의 응답이 너무나 잔인한 것이어서 슬픔과 분노를 더하게 할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기도한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고

이루어지는 것은 하느님의 뜻일 뿐이다.

 

기도는 기도일 뿐이다.

 

교회를 사고파는 목회자, 교회를 세습하는 목회자,

술마시고 띵까띵까하는 종교지도자들은 기도를 할 자격이 없다.

불의를 보고 그것을 불의라고 할 자격이 없다.

오직 하느님만 불의를 불의라 할 수 있다.

어디에서든 쉬지말고 기도하라, 그게 하느님의 뜻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기도는 신음소리와 모기만한 목소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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