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색 고양이 [고형렬]
고양이의 엽록체와 햇살과 유리창
경계가 없는 한 마리 공기의 선인장처럼 내 몸속은
온통 청색 덩어리로 차 있다
청색 고양이는 풀을 너무 많이 먹고 배탈이 났다
쥐를 잡아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화석이 되어버린 마그마의 영혼일 게요
나는 풀만 먹어요, 나는 풀만 먹고 살아왔어요
아니 아무 고통도 없는 물만 할짝할짝 끊어 먹을까요
이제 나는 나뭇가지에서 가시가 된 잎의 그림자를
벗 삼아 그것들을 먹을 궁리를 해요
허기가 져 쓰러질 지경이 왔죠
검은 책들이 유리창을 드나든다 기분 좋은 한낮의
유령들처럼......청색 고양이 짓이죠
고양이가 털까지 청색이 되는 날
고양이는 죽을 거예요, 그리고 날아갈 거예요
* 정확하진 않지만 13년 정도쯤 된 고양이를 키운다.
큰아이가 중일일 때 길고양이를 분양 받은 건데 그만한 세월을 키웠다.
가족중에는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
아기고양이일 때만 좋아했고
커가면서 밥도, 똥도 처리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베란다에 내놓고 키우게 되었다.
둘째가 가끔 사진을 찍을 때에만 모델이 되었을 뿐이고
막내는 손인가를 물린 뒤로 거들떠 보지 않는다.
물론 나도 손을 물린 뒤로는 쓰다듬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
그냥 밥 주고 물 주고 똥 치워주는 일만 한다.
베란다의 화분을 뜯어먹는 이 녀석은 나의 적이다.
아끼던 화분 몇 개를 풀 뜯어먹어 죽여버렸기 때문이다.
마음 속으로는 너, 풀 뜯어먹었으니 청색이 되는 날이 온단다......
그 날이 오긴 올텐데, 하면서도 밥 주는 일은 여전하다.
너, 언젠가 나비처럼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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