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손택수]
명절 앞날 세탁소에서 양복을 들고 왔다
양복을 들고 온 아낙의 얼굴엔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내 양복 주름이 모두
아낙에게로 옮겨간 것 같다
범일동 산비탈 골목 끝에 있던 세탁소가 생각난다
겨울 저녁 세탁, 세탁
하얀 스팀을 뿜어내며
세탁물을 얻으러 다니던 사내
그의 집엔 주름 문이 있었고
아코디언처럼 문을 접었다 펴면
타향살이 적막한 노래가 가끔씩 흘러나왔다
치익 칙 고향역 찾아가는 증기기관차처럼
하얀 스팀을 뿜어내던 세탁소
세상의 모든 구불구불한 골목들을
온몸에 둘둘 감고 있다고 생각했던 집
세탁소 아낙이 아파트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이 접혔다 펴지며 아련한 소리를 낸다
* 주름을 편다는 것
굽은 것을 편다는 것
마음은 그리하며 살아야 하지만
세상은 주름진 곳이 많고 굽은 것도 많다는 것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아름다운 길인 경우도 있고
울퉁불퉁한 돌길이 걷고 싶어하는 길인 경우도 있다.
욕심이 없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욕심이 없는 곳이 아름다운 곳이다.
아름답지 않다고 골목길이나 돌길을 없앤다는 것은 바보같은 일이다.
새해에 마음만은 욕심없이 미니멀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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