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모닥불 [백석]

JOOFEM 2016. 12. 23. 08:06






모닥불 [백석]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

잎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

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수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 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한 이

로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 학교 다닐 때, 농촌봉사활동을 마칠 즈음 동네에서 산 닭 스무 마리를 주셨다.

다들 닭 잡는 걸 어려워 해서 어릴 때 아버지가 잡던 방법으로 스무 마리를 잡았다.

(그 어려운 걸 해내지 말입니다.ㅎㅎ)

털 뽑고 배를 가르고 내장등은 다 버렸다.

한 선배가 다가오더니 닭똥집을 따로 챙겼다.

저것을 뭣에다 쓸꼬, 했더니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금곡쯤에서 내려

캠프파이어를 하며 뒷풀이를 했다. 술안주로 쓰일 줄은 몰랐다.

워낙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닭똥집까지 챙길 걸 생각 못 했던 게다.

밤새도록 모닥불에 둘러앉아 기타 치고 노래 부르며 닭똥집들을 씹었다.

백원짜리 담배들을 피우며 무슨 노래를 그리 불렀는지,무슨 얘기를 그리 했는지 모르겠다.

그저 기억에 남는 건 새벽 네,다섯시에 재만 남아 졸고있는 모닥불이 떠오르는 거다.

둘러앉는다는 것, 같은 노래를 부르며 손뼉 친다는 것, 마주 보고 웃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따뜻해진다는 것......그게 모닥불이 주는 사랑의 의미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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