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귀향 [서효인]

JOOFEM 2017. 2. 20. 12:11










귀향 [서효인]






  올림픽이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막내 외삼촌이 서울 언덕바지에 족발 가게를 열었다. 외

삼촌의 아들은 말이 늦게 트였다. 다 큰 아이의 침묵이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서울에

엊그제 올라온 우리는 가게 옥탑에 모여 앉아 밀린 살갗처럼 늘어선 집들을 내려다 보았다.

우리는 감탄사를 뱉었다. 아, 많다. 오,크다. 어머니가 말하길 사투리를 쓰는 자는 무식한

자라고 하였다. 옥상의 무식에서 외떨어진 자는 외삼촌의 아들뿐이었다. 우리는 족발을 먹

고 또 먹었다. 외삼촌은 줄 수 있는 게 족발 뿐이라면서 끼니마다 고소한 족발을 내어 주었

다. 우리는 처음에는 비계를 떼어내고 살코기만 먹다가 나중에는 족발을 뼈째 들고 발라 먹

었다. 서울 사람들이 무식하다고 손가락질했다. 족발같이 짜증난다고 했다. 족발같이 끈질

기다 했다. 개업식에서 어른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외삼촌의 아들은 말을 못 했다. 불편

한 침묵을 깨려 외숙모가 아들의 등짝을 쳤다. 등짝을 치고 놀라 울었다. 무식하게 울었다.

사투리를 들키면 장사에 좋을 게 없다고 하였다. 돌아가는 차편에 외삼촌은 랩으로 꽁꽁 싼

족발을 건넸다. 그날부터 우리에게서 풍기기 시작한 불편한 냄새가 몇 번의 올림픽이 지나

갈 동안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외삼촌은 고향에 내려와 다른 장사를 한다. 외삼촌의 아들은

이제 말도 하고 감탄도 잘 하는 청년이 되었건만, 족발은 겁나게 싫어한다고 한다.


                                                  

                                                                               문학과 사회, 2015년 여름호








* 가난했던 시절, 서울에 사람이 많으니 뭘 해도 돈 번다고 서울로,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 본토박이보다 본토박이가 아닌 사람이 더 많아진 시대이다.

가난도 부끄러운데 사투리까지 쓰면 업신여길까봐 언어를 숨겨보지만 불편한 언어의

냄새, 즉 은연중에 나오는 억양은 어쩔 수가 없었다.

무식하다 소리를 들을까봐 조심조심 몇해를 살다가 결국은 이질감을 극복하지 못 하고

귀향을 했나보다. 말 늦은 외삼촌의 아들이 말도 하게 된 건 역시나 고향의 푸근함 때문일 게다.

얼마나 서울살이가 힘들었으면 족발을 겁나 싫어할까.

서울 사람이 몇 안 되는 서울에서 이방인으로 살다 귀향한 그 마음을 이해한다.

나도 경주에서 4년간 살면서 이랬니더, 저랬니더, 널짰니더,하는 사투리에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어 이방인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지방으로 돌다가 자녀를 경주에서 하나, 평택에서 하나, 천안에서 하나 낳아서 이젠 천안에 눌러앉았다.

이랬슈,저랬슈,그류...... 사투리에 익숙해져서 산다.

워낙은 서울 사람으로 태어나 자라났지만 이제 나에게 귀향은 없다. 여기가 고향이다.



'시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우살이 [고영민]  (0) 2017.02.28
바람이 부네, 누가 이름을 부르네 [허은실]  (0) 2017.02.24
응시 [길상호]  (0) 2017.02.16
놓아줌에 대하여 [진해령]  (0) 2017.02.14
억울한 것들의 새벽 [이건청]  (0) 2017.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