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별내 옆 갈매*로 옮겨 가기 [김은경]

JOOFEM 2018. 9. 3. 08:23


                                                                        시집 상재 기념으로 시인을 만나고 왔습니다. 이 가을에......







별내 옆 갈매*로 옮겨 가기 [김은경]






볕이 좋은 날이다


이불을 빨고

공터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까무룩 잠을 자다 일어나

식은 죽을 먹어도

아무렇지 않은


머지않은 미래엔 주정뱅이 사내를 피해

도박을 일삼는 남편을 피해

여자들끼리 모여 사는 집을 하나 장만해야지


배신을 모르는 안개꽃을 사야지

코코넛향 세숫비누를 사고

흰 머리는 그냥 두어도 괜찮지


부지런히 분갈이를 하고

쌀독에 쌀을 채우고

손톱으로 벌레를 짓이기는 대신 단추를 돌려

가만히 라디오를 켜야지


김광석이 오고

퀸과 이글스가 오고

어떤 새는 죽고

어떤 개로부터 새끼는 태어나고


궁금했던 사람의 목소리를 간신히 떠올리는 동안

저녁이 바투 오겠지


일몰이 올 때 봉숭아꽃 발그레한 낯빛이 좋아

모르는 데로 열차가 떠나듯 찻물 끓는 소리가 좋아

집으로 향하는 자전거 바퀴 소리가 좋아


숨소리를 죽이고 사뿐사뿐 지나가는

공룡 모양 구름도


애끓는 시간은 찻잔 바닥에 가라앉고

한 모금 두 모금

한 계절 두 계절

한 사람 두 사람

한 잎 두 잎


죽음은 그렇게

별내 옆 갈매로 옮겨 가듯,


*  별내동, 갈매동 : 남양주와 구리 경계에 이웃한 동네


                          - 우리는 매일 헤어지는 중입니다, 실천문학사, 2018






* 김은경시인이 한동안 뜸하고 조용하더니 이렇게 평화롭게 지내셨구나.

배드민턴을 치고 라디오를 듣고 찻물을 끓이며 시인의 일상을

저곳 별내에서 보내셨구나.

평화롭게만 지내는 동안 시를 열심히 지으셨구나.

그래서 그 시들을 시집 보내려고 시집을 내셨구나.


아들이 포천에서 군생활할 때 몇번은 지나가며 별내란 동네도 있구나,

이름이 참 좋고 아기자기하구나,

했는데 이 별천지 안에서 사셨구나.


이렇게 사는 동안 갈매로 옮겨가기 전에

한번 만나야겠구나.

축하하며 차 한 잔 하며 별내 이야기를 들어야겠구나.


(시집 상재를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