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설거지할 때 여자는 춤 추고 논다.
설거지 [박수서]
사내가 돈 벌어다 주고 밤일 잘하는 것 말고
아내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하다
밥 짓고 국 끓이고 반찬 만들고
청소하고 빨래 널고 음식물 쓰레기도 버렸지만
이놈의 설거지는 참 못 할 일이다
물기가 덜 말랐네 세제가 남아있네 밥알이 살아 있네
할 때마다 한 방씩 얻어맞으니
다른 일은 다 해도 이놈의 설거지는 정말 못 할 일이다
얼마 안 되는 내 생도 지금까지
옳게 설거지를 해본 일이 없는데
내가 무슨 그릇을 무슨 접시를
투덜거리는 사이 아뿔싸!
설거지통으로 미끄러진 접시가 쨍그랑 한다
술이나 처먹지 마, 이 인간아!
- 해물 짬뽕 집, 달아실시선, 2018
* 서울에서 교회를 다닐 때니 오래된 얘기다.
예배를 마치면 점심식사를 하고 식사후엔 여신도들이 설거지를 했다.
하루는 남신도들이 일주일 내내 설거지만 하는 여신도를 위해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했다.
모든 여신도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나라가 해방된 듯 좋아했다.
그후로 남신도들이 돌아가며 설거지를 하는 전통이 생겼었다.
그릇을 닦는다는 것은 자신을 닦는 것이기도 하다.
다음 식사를 위해 그릇을 깨끗이 닦는다는 것은 내 몸과 영혼도 말끔히 씻어내는 일이다.
나는 다 하는데 음식물 버리는 건 못해서 음식물 쓰레기 건조기를 샀다.
바짝 말려서 버린다.
(하나쯤 잘 못하는 것도 있어야 한다. 그게 여자에 대한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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