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이직한 회사에는 텃새가 산다 [김광명]

JOOFEM 2024. 8. 5. 22:21

철새인 말똥가리가 잠시 쉬는데 텃새인 까치가 둘러싸고 텃세를 부립니다. 좀 쉬자!

 

 

 

 

 

이직한 회사에는 텃새가 산다 [김광명]

 

 

 

 

오착륙이라면 좋겠어 오늘의 도래지는

 

종이컵을 사랑의 날개라고 부르지

유럽의 여름을 탁자 위에 늘어놓고, 풍선도 불어

최대한 쓸모없게

 

따듯할수록 잘 녹는 기포

달달함은 이때 등장하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부리로 농담을 저어버리지

 

눈이 마주칠 땐 어떤 얼굴이 어울릴까

노르딕풍의 쓰다 남은 겨울과 털실 조끼와 통조림 산타

기억 니은 기억 디귿 기억 리을 기억 다시 도돌이표

자작나무의 자세로 시럽이 되지

 

휘청거리며 더 아래로 날아

난 꿈을 잃어버린 나이부터 체인질링*이 취미였어

 

일어서지 못하면 팔짱 끼고 떠날 수 없지

끝이 아니야

모든 것을 희생하는 사랑의 시작이지

왼뺨이 부서진 철새는 잘 날 수 있을까

잘 숨을 수 있을까

깃털이 얼어붙은 겨울에 웃어도 될까

 

단맛이 부족한데 내일은 괜찮을까

불안은 새장속에서도 충분히 아름답지

함께 날아보지 않겠나? 반짝이는 새 깃털을 개봉하든 말든

베이비의 수염은 자라고

 

옮겨 쓰는 자서전은 늘 열린 결말

부푼 일거리는 무제한의 기회, 영웅이 되면 어떡하나

시간을 앞당겨 여행할 수 있다면 죽은 후가 가장 좋겠지만

판타지를 엎지르면 누군가 눈치 챌지도 몰라

 

북쪽창을 바라보는 여기는

텃새들이 사는 세상

돌아보면, 달콤한 점심시간이었는데

아무도 내 이름을 물은 적 없다

 

 

* 인간의 아기와 트롤의 아기를 바꿔치기하는 것

 

 

                    - 23년 반연간지 〈시인들〉 가을겨울호

 

 

 

 

 

 

* 이직을 한다는 건 철새가 북쪽으로 날아가다가 도저히 힘에 부쳐 날지 못하고

한 곳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것과 같다.

철새가 아닌 텃새들이 왕따 시키고 괴롭힘을 주어 그 등쌀에 힘들게 지낼 수밖에 없다.

경주에서 사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고 천안으로 이사해서 삼십년을 한 직장을 다녔다.

처음엔 새로운 직장에서 적응하기까지 약간의 텃새들을 경험했지만 차차 적응이 되어

내가 텃새가 되었다. 한 곳에서 삼십년 다녔다면 왕텃새는 될만하다.

어느 조직이건 처음에는 힘들긴 할게다.

 

아무도 내 이름을 물은 적 없다면 참 인정머리 없는 직장일 게다.

조금씩 사랑과 믿음을 쌓아 좋은 직장이 되면 좋겠다.

철새니 텃새니 따지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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