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고 가는 사람 [임지은]
손에 물건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졌다 자신에게
아주 소중한 무엇이라도 되는 양 품에 안고 다니는 사람
들이 바나나를 들고 가는 사람, 달걀 한 판을 들고 가는
사람, 포도송이를 들고 가는 사람, 컵라면을 차곡차곡 쌓
아서 들고 가는 사람, 들고 갈 것이 없어서 자기 자신을
들고 가는 사람까지
저 사람은 아침마다 바나나를 먹으며 출근 준비를 하
겠지, 저 사람은 가족이 많아 달걀 한 판 정도는 금방 소
진될거야, 저 사람은 포도를 참 좋아하는구나, 컵라면을
사 가는 이의 가스레인지는 깨끗하겠지, 자기 자신을 들고
가는 사람은 끝내 자기 자신을 떨어뜨리겠구나
곧 한 사람이 다가와 제가 도와드릴까요? 함께 나눠
들겠구나 집 앞에 다다라서는 도와 주셔서 감사해요 양손
가득한 자신을 한 움큼 떼어 주겠구나 제가 받아도 될까
요? 망설이던 사람은 어느새 주머니란 주머니를 전부 꺼
내겠구나 전 드릴 게 없어서 어떡하죠? 머리를 긁적이겠구
나 괜찮아요 뭘 받으려고 드린 거 아니에요,
그렇게 조금 가벼워진 채로 집에 도착했는데 이미 집엔
바나나도 달걀도 컵라면도 모두 있고 당신을 만난 뒤로
무언가를 사 들고 오지 않은 날이 없다고 마트에서 보내
는 시간이 길어졌다고 두리번거리는 습관이 생겼다고 그
렇게 자기 자신을 나눠 준 일 이후로
- 이 시는 누워 있고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민음사, 2024
* 종교의 의미는 사랑과 자비이다.
고뇌를 들고 가는 사람, 고난을 들고 가는 사람, 사랑의 아픔을 들고 가는 사람,가난을 들고 가는 사람
고독을, 병을, 못이룬 꿈을......
들고 갈 게 많아서 힘든 삶을 사랑과 자비는 가벼워지라고 도와준다.
사랑이 짠!하고 나타나고 자비가 짠!하고 나타나서 힘든 삶의 무게를 덜어준다면 땡큐다.
인구가 점점 늘면서 들고 가는 사람이 정말 많아졌다.
서로서로 나누어 들어주는, 사랑과 자비가 많아지는 세상이 된다면 좋겠다.
오늘도, 내일도 두리번거리는 세상이 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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