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 곳 [문태준]
오늘은 이별의 말이 공중에 꽉 차 있다
나는 이별의 말을 한움큼, 한움큼, 호흡한다
먼 곳이 생겨 난다
나를 조금조금 밀어내며 먼 곳이 생겨난다
새로 돋은 첫 잎과 그 입술과 부끄러워 하는 붉은 뺨과 눈
웃음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대기는 살얼음판 같은 가슴을 세워들고 내 앞을 지나간다
나목은 다 벗고 다 벗고 바위는 돌 그림자의 먹빛을 거느
리고
갈 데 없는 벤치는 종일 누구도 앉힌 적이 없는 몸으로
한곳에 앉아 있다
손은 떨리고 눈언저리는 젖고 말문은 막혔다
모두가 이별을 말할 때
먼 곳은 생겨난다
헤아려 내다볼 수 없는 곳
- 먼 곳, 창비, 2012
* 연식이 오래 되다보니 주변에서 또래의 부음을 종종 듣게 된다.
세상에 올 때는 비슷하게 왔지만 떠나가는 것은 순서가 없이 제각각이다.
뜬금없는 이별에 마음은 황망해지고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게 된다.
인간의 신체가 단단한 것 같아도 한없이 약하다.
건강체라고 믿었던 친구도 소용없다.
병마와 싸우다 가던지, 뜻밖의 사고로 가던지 모든 이별은 허망할 뿐이다.
먼 곳을 보면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먼 곳에 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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