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먼 곳 [문태준]

JOOFEM 2025. 9. 17. 20:26

 

 

 

 

 

먼 곳 [문태준]

 

 

 

 

  오늘은 이별의 말이 공중에 꽉 차 있다

  나는 이별의 말을 한움큼, 한움큼, 호흡한다

  먼 곳이 생겨 난다

  나를 조금조금 밀어내며 먼 곳이 생겨난다

  새로 돋은 첫 잎과 그 입술과 부끄러워 하는 붉은 뺨과 눈

웃음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대기는 살얼음판 같은 가슴을 세워들고 내 앞을 지나간다

  나목은 다 벗고 다 벗고 바위는 돌 그림자의 먹빛을 거느

리고

  갈 데 없는 벤치는 종일 누구도 앉힌 적이 없는 몸으로

한곳에 앉아 있다

  손은 떨리고 눈언저리는 젖고 말문은 막혔다

  모두가 이별을 말할 때

  먼 곳은 생겨난다

  헤아려 내다볼 수 없는 곳

 

 

                - 먼 곳, 창비, 2012

 

 

 

 

* 연식이 오래 되다보니 주변에서 또래의 부음을 종종 듣게 된다.

세상에 올 때는 비슷하게 왔지만 떠나가는 것은 순서가 없이 제각각이다.

뜬금없는 이별에 마음은 황망해지고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게 된다.

인간의 신체가 단단한 것 같아도 한없이 약하다.

건강체라고 믿었던 친구도 소용없다. 

병마와 싸우다 가던지, 뜻밖의 사고로 가던지 모든 이별은 허망할 뿐이다.

 

먼 곳을 보면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먼 곳에 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까닭이다.

'시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 번째로, 같은 길을 지나쳤다 [김광명]  (1) 2025.10.04
진짜 거짓말 [김광명]  (0) 2025.09.24
뒤편 [천양희]  (1) 2025.09.05
감자를 캐면서 [이재무]  (1) 2025.08.23
자벌레 [반칠환]  (3) 2025.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