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언제나 속였다 [이승훈]
인생은 언제나 그를 속였다 그가 다가가면 발로 차고
그가 도망가면 팔을 잡았다가 그가 웃으면 울고 그가 울면
웃었다 그가 망하면 웃고 그가 팔을 쳐들면 웃고 그가
걸어가면 웃고 너를 안을 때뿐이다 인생이 그를 속이지
않은 건 너를 안을 때 해가 질 때 너의 눈을 볼 때
너와 차를 마실 때 그러나 너와 헤어지면 인생은 그를
속였다 추운 골목을 돌아가면 골목의 상점에서 담배를
사면 가로등에 불이 켜지면 인생은 속였다 밤이 오면
아파트 계단을 오르면 작은 방에서 잠을 이룰 수 없으면
밖에 바람이 불면 바람속에 돌아누우면 잠이 안 와
문득 일어나면 새벽 두 시 캄캄한 무덤에 불을 켜면 무덤
속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 책상 위 전기 스탠드를 켜면
위통이 찾아오면 다시 불을 끄면 캄캄한 무덤속에 누워
있으면 책상위의 냉수를 마시면 책상위의 사과를 먹으면
아아 '나'를 먹으면 아무 소리도 나지 않으면 문득 머언
무적이 울면 새벽 연필을 깎으면 이마에 술기운이 남아
있으면 다시 잠이 안오면 문득 무섭다는 느낌이 들면
턱을 손에 고이면 떨리는 손으로 일기를 쓰면 돌덩어리
우울황폐한 새벽 인생은 그를 속였다 인생은 언제나 그를
속였다 그를 속이고 그를 감시하는 인생이라는 놈!
* 그것이 인생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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