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그륵 [정일근]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
물을 담아 오신 어머니의 그륵을 앞에 두고
그륵, 그륵 중얼거려 보면
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찾고
어머니의 그륵에 담겨졌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
그래서 내가 담는 한 그륵의 물과
어머니가 담는 한 그륵의 물은 다르다
말 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
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
나는 사전을 통해 쉽게 말을 찾았다
무릇 시인이라면 하찮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뜨겁게 살아 있도록 불러 주어야 하는데
두툼한 개정판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 두고
서정시를 쓰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 성경에는 하나님이라 기록되어 있지만 어머니세대에서는 하느님이라
부를 수 있다. 하나님이라 부르며 믿건 하느님이라 부르며 믿건 우리가
믿는 그 분은 한분이시다. 예수님이 제자의 발을 씻으시건,씻치시건
제자를 사랑하고 발을 닦아주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살면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살아야 하는 게다.
설령 사전적인 의미가 틀리다 해도 다른 것은 아닌 까닭이다.
어머니의 그륵은 어머니의 그릇이며
하느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과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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