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 어머니가 주무신다 [박형준]
침대에 앉아, 아들이 물끄러미
바닥에 누워 자는 어머니를 바라본다.
듬성듬성 머리칼이 빠진 숱 없는 여인의 머리맡,
떨기나무 사이에서 나타난 하느님이
서툴게 밑줄 그어져 있다, 모나미 볼펜이
펼쳐진 성경책에 놓여 있다.
침대 위엔 화투패가 널려 있고
방금 운을 뗀 아들은 패를 손에 쥔다.
비오는 달밤에 님을 만난다.
생활이 되지 않는 것을 찾아
아들은 밤마다 눈을 뜨고,
잠결에 앓는 소리를 하며
어머니가 무릎을 만지고,
무더운 한여름밤
반쯤 열어논 창문에 새앙쥐 꼬리만한 초생달
들어온다, 삶이란
조금씩 무릎이 아파지는 것,
가장 가까운 사람의 무릎을
뻑뻑하게 하는 것이다.
이미 저 여인은 무릎이 비어 있다.
한달에 한번 시골에서 올라와
밀린 빨래와 밥을 해주고
시골 밭 뒤 공동묘지 앞에 서 있는 아그배나무처럼
울고 있는 여인.
어머니가 기도하는 자식은 망하지 않는다,
가슴을 찢어라 그래야 네 삶이 보인다, 고
올라올 때마다 일제시대 언문체로 편지를 써놓고 가는
가난한 여인, 새벽 세시에 아들은
혼자 화투패를 쥐고 내려다보는 것이다.
불타는 떨기나무는 이미 꺼진 지 오래,
불길에 하나도 상하지 않던
열매들은 모두 어디론가 흩어졌지만
일찍 바닥에서 일어난 어머니가
침대 위의 화투를 치우고
모로 누운 서른셋 아들의 머리를 바로 뉘어주고
한시간 일찍 서울역에 나가 기차를 기다린다.
해가 중천에 떠오른 그 시각
밭 갈 줄 모르는 아들의 머리맡에
놓인 언문 편지 한 장.
"어머니가 너잠자는데 깨수업서 그양 간다 밥잘먹어
라 건강이 솟애내고 힘이 잇다"
* [내가 깨울 수 없어서 그냥 간다. 밥 잘 먹고 건강해라.]
누구의 어머니가 되었든 다 똑 같은 마음일 테다.
아들이 마흔이 되었건 예순이 되었건 밥 잘 먹으라는 것이 어머니의 마음이다.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하나님이 잘 아시기에 자식이 망하지 않으리라.
늘 밥 잘 먹고 건강하리라.
5월은 어머니의 언문편지를 읽는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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