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편지[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꼴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기다림이라는 희망이 절벽밑으로 굴러 떨어지고 손을 뻗어 구원을 기다리지만
이마저도 거절당하면 이보다 더한 절망은 없다.
권태가 주는 사소함으로 그대를 포기하리라.
다만 언젠가 다시 애착이 생기면 지금의 자유를 양보하게 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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