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비망록[김경미]
누가 또 어디쯤서 나를 저버리나 보다
마음 속 햇빛 많은 나뭇잎들 폭설처럼
떨어져 내리더니
수박향내 애틋하던 저녁 산책길이 돌변했다
이번엔 남의 집 대문앞이 아니다
누드화 같은 이 바다로 바다로 누가 또 날 버리나 보다
잡을 것 오직 은박지 같은 물뿐이다
소리치는 것도 부끄럽다 망망대해 혼자뿐인데
누군가 나타나도 원수가 될 것이다 기다림 간절했으므로
언제나 이런 식이다
이렇게는 아니었다 이렇게는 아니었다고 미안하다고
용서하라고
현생의 나를 만난 내 생에 사과라도 남기고 싶었으나
물천장 위 비바람에 섞여 내리는 주황빛 저녁이
성당의 색유리 가득한 성가 같아
붉은 점박이 나리꽃처럼 걸핏하면 끼얹어지는 이 침수
이 상실감을,
하긴 나는 사랑하던가 떠나고 없는 고요할 물 속
묵묵함을 내심 더 바랬던가 늘 그런 식이었던가
* 누군가에게 버려진다는 거. 유기되고 또 유기 되고 그래서 더이상 느끼지 못하는 유기불안을
이제는 체념하고 받아들이며 순응할 줄 아는 나이. 그럼에도 때때로 버려지지않기를 희망하며 마음속에 성당의 색유리로 도배를 해본다.
영화 캐스트어웨이에서 톰행크스는 자기가 만든 인형이 바닷속에 떠내려 갈 때 소리내어 울었다. 마지막으로 그 인형에게조차 유기되는 고통을 참을 수 없어서였을게다.
저 깊은 바닷속에 잠겨져 있는 이 상실감을 누가 건져 올려줄꼬.
고독하고 고독한 지금의 내 생에 대해 미안하다 미안하다 외칠 수 밖에 없는 존재에 오! 은박지같은 물이여 제발 잡혀만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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