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배경이 되다[천양희]

JOOFEM 2005. 8. 18. 13:02

 

 

배경이 되다[천양희]

 

 

 

 

새벽이 언제 올지 몰라 모든 문 다 열어놓는다고

그가 말했을 때

꿈꿀 수 있다면 아직 살아 있는 것이라고

내가 말했다.


나에게만 중요한 게 무슨 의미냐고

내가 말했을 때

어둠을 물리치려고 애쓴다고

그가 말했다.


생각의 끝은 늘 단애(斷崖)라고

그가 말했을 때

꽃은 나무의 상부에 피는 것이라고

내가 말했다.


세상에 무늬가 없는 돌은 없다고
내가 말했을 때

나이테 없는 나무는 없다고

그가 말했다.


바람이 고요하면 물결도 편안하다고

그가 말했을 때

산은 강을 건너지 못한다고

내가 말했다.


더이상 할말이 없을 때

우리는 서로의 배경이 되었다.

 

 

 

 

 * 대화란 너와 내가 말하는 것이다. 서로 의견이 틀리고 생각이 다를텐데도 말이다.

   대화란 너와 내가 탐색하는 일이며 마침내는 틀리고 다른 것을 알아내는 일이다.

   결국은 서로의 배경이 되기 위한 하나의 몸짓 혹은 과정이 대화이다.

   대화는 혼잣말이 아니라 서로 마주보고 눈높이를 맞추며 하는 것이다.

   세상에 눈높이가 맞는 사람은 없다. 다만 맞추며 살아갈 뿐이다.

   지금, 우리 모두 누군가의 배경이 되기 위해 낮은 눈높이 높이고

   높은 눈높이 낮추며 재잘대며 살아간다. 그게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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