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밥과 잠과 그리고 사랑[김승희]

JOOFEM 2006. 8. 12. 17:30

 

 

 

 

 

 

밥과 잠과 그리고 사랑[김승희]

 

 

 

 

오늘도 밥을 먹습니다.
빈곤한 밥상이긴 하지만
하루 세끼를.
오늘도 잠을 잤습니다.
지렁이처럼 게으른
하루 온종일의 잠을.
그리고 사랑도 생각했습니다.
어느덧 식은 숭늉처럼 미지근해져 버린
그런 서운한
사랑을.



인생이
삶이
사랑이
이렇게 서운하게 달아나는 것이
못내 쓸쓸해져서
치약튜브를 마지막까지 힘껏 짜서
이빨을 닦아보고
그리고 목욕탕 거울 앞에
우두커니 서서 바라봅니다.


자신이 가을처럼 느껴집니다.
참을 수 없이 허전한
가을 사랑
하나로.

 

 

 

그래도 우리는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영원의 색인을 찾듯이
사랑하는 사람 그 마음의 제목을 찾아
절망의 목차를 한장 한장
넘겨보아야

따름이
아닌가요

 

 

 

* 치약튜브를 마지막까지 짜야하는 허전함은 느껴본 사람만이 안다.

  시인은 마치 삶의 경지를 달관한 것처럼 절망의 목차를 넘겨야 한다고 하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새카맣게 탄 채 허망한 목차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인생은 [                ]이다.

  밥은    [                ]이다.

  잠은    [                ]이다.

  사랑은......

 

 

   물음표없는 물음이다. 마침표없는 마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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