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순대를 먹으며[박후기]

JOOFEM 2006. 8. 16. 13:24

순대 

 

 

 

 

순대를 먹으며[박 후기]

 

 

 


 

끓는 찜통 위
똬리를 튼 순대가 변의를 느끼는지
허리까지 탱탱해지며
연신 가쁜 숨을 내몰아쉰다

 

어머니,
순대를 껌처럼 오래도록 씹고 계신다
쉴새 없이 여닫는 입술이 괄약근 같다

 

똥은
항문이 떨구는 노랗게 익은 열매다
열매도 달리지 않는 가엾은 노구의 식탐이여

 

죽은 돼지가 남긴 염통이 몇 점
낮달 같은 접시에 담겨 두근거린다

 

죽음이 껌을 팔러 다녔다

 

 

 

 

 

* 어릴 때 어머니는 아버지와 다투면 늘 나의 어린 손을 붙잡고 집을 나섰다.

  시장통 어디에선가 나무의자에 앉아 순대를 사주시며 어머니도 순대를 껌처럼 오래도록 씹으셨다.

  비위가 약했던 나는 어머니처럼 입에 맞지 않는 순대를 입에서 이리저리 굴리며 먹었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나는 애인과 명동에서 길거리 순대를 사먹었다.

  겉으로는 어, 그래 먹자.했지만 속으로는 하필 내 애인이 순대같은 걸 먹다니(투덜투덜) 그랬다.

 

  지금은 가끔 순대를 먹는다. 특히나 가까운 병천 순대는 좀 특이해서 맛있게 먹기도 한다.

  죽은 돼지가 남긴 삶은 순대, 정말 맛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