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단의 발길질
아담, 쟤 왜 저래.
달콤한 화채 [문성록]
아버지가 수박을 싣고
장터로 떠돌다 돌아온 날 밤이면
트럭 옆자리에는
늘 낯익은 아주머니가 앉아있었습니다
그런 저녁이었습니다
어김없이 팔다 남은 수박들이
마당으로 내동댕이쳐졌고
어머니에게 발길질 해대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방문에 어른거렸습니다
아픈 허리를 움켜쥐고 흐느끼며 어머니는
안방에서 쫓겨 나와 마실로 뛰어갔었습니다
누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푹 덮어쓰고
아프게 나를 껴안았습니다
겁에 질려 잠이 들면서도 나는
복숭아 만한 누나 가슴을 만지던 손이 떨려왔었습니다
아침에 깨어보니 언제 돌아오셨는지 어머니는
커다란 양푼이에 깨진 수박들을
숟가락으로 긁어 담아 하얀 설탕을 싸락눈 같기도 한 설탕을
하염없이 뿌리며 턱밑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계셨습니다
누나와 나는 아무 일도 모른다는 듯이
설탕 맛 밖에 나지 않는 화채를 떠먹으면서도
시퍼렇게 멍든 어머니의 얼굴은 차마 보지 않았습니다
마당가에는 깨진 수박들이
빨간 잇몸을 드러내고 웃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누나와 나는
아침에 먹다 남기고 간 화채를
냉장고에서 꺼내 허기를 달랬습니다
누나와 나는 평상 위에 누워 어머니를 기다렸지만
밤이슬이 우리 이마를 적시고 별들이 사라질 때까지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누나와 나는
화채를 다시는 먹을 수가 없게 되었는데요
그것은 아마 수박 위에 하염없이 뿌려놓은 어머니의 눈물의 맛을
그때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인 것도 같습니다
* 낯선 이름의 시인입니다. 그럴 것도 할 법한 게 이 시인은 지방 모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는 지방대학에 공모한 대학생현상공모에 당선된 작품입니다. 올해 발표된 수많은 신인상 작품보다 결코 모자라지 않습니다. 아니, 그 어떤 작품보다 더 낫다고 생각됩니다. 머리로 쓴 시와 가슴으로 쓴 시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봅니다. 등단을 하지 못했지만 이 시로 그는 이미 시인입니다. '헛된 수사의 미망에서 벗어나 자기도 모르는 제 속을 똑똑히 들여다보자' 습작기에 계시는 분들께 꼭 당부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인이라는 관사가 아니고, 거품 같은 명성이 아니며 오로지 자기 발견/자기 치유로서의 글쓰기입니다. 시읽기도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시사랑카페의 눌언님이 쓰신 글입니다.]
* 하염없는 어머니의 눈물맛.
예나 지금이나 가정에는 폭력이 존재하고 힘없는 여성과 아동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달라진 것은 과거처럼 그냥 폭력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떠남으로서 가족해체가 된다는 거다.
이브는 더이상 아담의 갈빗대가 아니기에, 그리고 사회적인 존재로서 그 포지션이 일정부분 얻어졌기
에 가정을 포기하고 자아를 찾아 떠나는 이가 많아졌음을 알 수 있다.
발길질에 대한 삼십육계는 발길질을 한 자나 삼십육계를 감행한 이에게만 불행이 아니라 그 자녀들이
눈물맛 가운데 평생을 살아야 하고 그 슬픔을 대물림해야 하는데 그 비극이 있는 거다.
가족해체가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가는 현대사회에, 해체된 가정에 따뜻한 시선과 긍휼히 여기는 마음
으로 배려하는 분위기가 제이, 제삼의 가정해체를 막는 방편이리라.
'시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웃사이더 감별하기[이희중] (0) | 2007.04.14 |
---|---|
어처구니[이덕규] (0) | 2007.04.08 |
물소리를 듣다[서숙희] (0) | 2007.04.05 |
낙화[이형기] (0) | 2007.04.01 |
긍적적인 밥[함민복] (0) | 2007.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