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물소리를 듣다[서숙희]

JOOFEM 2007. 4. 5. 15:44

 

물소리를 듣다 / 서숙희



때론 보이지 않을 때 열려오는 귀가 있다
달없는 밤 냇가에 앉아 듣는 물소리는
세상의 옹이며 모서리들을 둥근 율律로 풀어 낸다

물과 돌이 빚어내는 저 무구함의 세계는
제 길 막는 돌에게 제 살 깎는 물에게
서로가 길 열어주려 몸 낮추는 소리다

누군가를 향해 세운 익명의 날刀이 있다면
냇가에 앉아 물소리에 귀를 맡길 일이다
무채색 순한 경전이 가슴에 돌아들 것이다
 


 
 
* 물과 돌은 아주 절묘하게 부딪힘이 없이, 혹은 작은 신음 소리도 없이 관계를 맺는다.
  무릇 인간은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어 이렇게까지 관계하지 않는다.
  마음에는 늘 날선 채 핏발선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따뜻함, 온화함, 그리고 서로 열어주는 그 배려가 아쉬운 요즘 세상이다.
  귀밝이술이라도 한잔하고 물소리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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