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의 식당[엄원태]
그 식당 차림표에는
열 가지가 넘는 메뉴가 준비되어 있고
가격 또한 저렴한 편인데
가령, 낙지볶음은 한 접시에 기껏 오천원이다
홀 한쪽에는
주방으로 쓰는 씽크대와 장탁자가 있고
식탁은 세 개
의자는 열세 개 있다
주방으로 쓰는 씽크대와 장탁자가 있고
식탁은 세 개
의자는 열세 개 있다
손님은 하루 평균 여남은 명인데,
어쩌다 술손님을 한 팀 받기라도 하는 날이면
주인아줌마는 기꺼이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을
내줄 준비가 되어 있다
어쩌다 술손님을 한 팀 받기라도 하는 날이면
주인아줌마는 기꺼이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을
내줄 준비가 되어 있다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는 그 식당이
텅, 텅, 비어 있던 어느날
나는 거기서 짠 국밥 한 그릇을
신김치와 콩나물무침으로 먹은 적이 있다
텅, 텅, 비어 있던 어느날
나는 거기서 짠 국밥 한 그릇을
신김치와 콩나물무침으로 먹은 적이 있다
어쩌다 이렇게 조용한 주택가 길목에
이런 식당이 허술하게 문을 열고 있담,
생각하는 것이 상식, 그 상식을
보기좋게 뒤집으며 그 식당은 거기에 있는 셈인데……
한번은 세무서에서 나온 젊은 주사가
조용히 업종 전환을 권유한 바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런 식당이 허술하게 문을 열고 있담,
생각하는 것이 상식, 그 상식을
보기좋게 뒤집으며 그 식당은 거기에 있는 셈인데……
한번은 세무서에서 나온 젊은 주사가
조용히 업종 전환을 권유한 바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식당 아줌마는 늘 준비해놓은 반찬 중에서
날짜를 못 이겨 상하기 직전인 것만으로
자신의 식사를 해결하곤 하는데,
그 처연한 혼자만의 식사를
그 앞을 지나다니며 무심히 몇번 보았다
날짜를 못 이겨 상하기 직전인 것만으로
자신의 식사를 해결하곤 하는데,
그 처연한 혼자만의 식사를
그 앞을 지나다니며 무심히 몇번 보았다
삶이란 게 그런 것은 아닌가
쉬어빠지기 직전의 음식을 어쩔 수 없이
혼자서 느릿느릿 씹어대는, 어떤, 말로는 다 못할
무심함 같은, 그런 나날들의 이어짐……
쉬어빠지기 직전의 음식을 어쩔 수 없이
혼자서 느릿느릿 씹어대는, 어떤, 말로는 다 못할
무심함 같은, 그런 나날들의 이어짐……
오후 세 시 [김상미]
오후 세 시의 정적을 견딜 수 없다
오후 세 시가 되면 모든 것 속에서 내가 소음이 된다
로브그리예의 소설을 읽고 있을 때처럼
의식이 아지랑이로 피어올라 주변을 어지럽힌다
낮 속의 밤
똑 똑 똑
정적이 정적을 유혹하고
권태 혹은 반쯤은 절망을 닮은 멜로디가
문을 두드린다
그걸 느끼는 사람은
무섭게 파고드는 오후 세 시의 적막을 견디지 못해
차를 끓인다
너 또한 그렇다
부주의로 허공 속에 찻잔을 떨어뜨린다 해도
순환의 날카로운 가슴에 눌려
내면 깊이에서 원하는대로
차를 마실 것이다
공약할 수도 훼손시킬 수도 없는
오후 세 시의 적막
누군가가 일어나 그 순간에 의탁시킨
의식의 후유증을 턴다
그러나 그건 제스처에 불과하다
오후 세 시는 지나간다
읽고있던 책의 한 페이지를 덮을 때처럼
뚝딱 뚝딱 뚝딱.....
그렇게 오후 세 시는 지나간다
정적 안에서 소용돌이치던 정적 또한 지나간다
흐르는 시간의 차임벨소리에 놀라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는 건
우리 자신의 내부,
그 끝없는 적막의 두께뿐이다
* 인생에 있어서 'noon of life'보다도 더 적막하며 더 처연한 것이
오후 세 시의 인생이다.
상하기 직전의 음식을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인생.
좋은 음식은 자식들에게 주고
남는 것만으로도 족하며
인생 뭐 있어, 자조하며 그것이 고귀하고 숭고한 삶인 양
정적 속에 몸을 숨긴다.
어른이 되려고 가파르게 쉼없이 달려왔다가
쏜살같이 내리막길을 걸으며
어쩔 수 없는 식사로도 감사하며 사는 삶이 되었다.
지금, 냉장고를 뒤져 상하기 직전의 음식으로
어쩔 수 없는 식사를 준비하는 오후 세 시의 인생에
따스하고 기인 햇살이 위로하고 또 위로해 주길
제법 느릿느릿 아끼고 아껴 기도한다.
'시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막다른 골목[황인숙] (0) | 2007.04.29 |
---|---|
그 깃발, 서럽게 펄럭이는[박정대] (0) | 2007.04.28 |
자전거도둑[신현정] (0) | 2007.04.20 |
도장골 시편 - 민달팽이[김신용] (0) | 2007.04.20 |
꽃나무 아래의 키스[이수익] (0) | 2007.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