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수배전단을 보고[윤성택]

JOOFEM 2007. 10. 26. 19:27

 

 

 

 

 

 

 

수배전단을 보고[윤성택]

 

 

 

 

 


귀갓길에 현상수배 벽보를 보았다
얼마나 많은 곳에 그의 자유를 알려야 하는지
붉은 글씨로 잘못 든 生의 내력이 적혀 있다
어쩌다 저리 유명해진 삶을
지켜 봐달라는 것일까
어떤 부릅뜬 눈은
생경한 이곳의 나를 노려보기도 한다

어쩌면 나도
이름 석자로 수배중이다
납부 마감일로 독촉되는 고지서로
열자리 숫자로 배포된 전화번호로
포위망을 좁혀오는지도 모른다

칸 속의 얼굴은 하나 둘 붉은 동그라미로
검거되어 가는데, 나를 수배한 것들은
어디서 잠복중일까

무덤으로 연행되는 남은 날들,
그 어딘가
잡히지 않는 희망을
일망타진할 때까지
나는 매일 은신처로 귀가하는 것이다

 

 

 

 

 

 

 

* 나의 은신처를 어떻게 잘들 아는지 포위망이 좁혀져 온다.

  - 선배님, 저 공칠학번인데요. 이번주에 체육대회합니다. 오세요.

 (얘야, 내 딸이 공칠학번이란다. 내가 늬들하고 놀아야겠니?)

 - 학군동기 누구누구 대령진급했으니 축하해 주라.

 (야, 내가 그 많은 학군동기를 어떻게 일일이 챙기겠니?)

 - 아, 나 고등학교 육십구회 졸업했는데 월간조선 하나 봐주게.

 (육십구회,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데 생돈을 버리라구요?)

 - 지금 은행으로 오시면 많은 돈 대출해 드려요.

 (그냥 주신다면 고맙겠지만.......)

 

 나는 늘 이런 수배망을 피해 잘도 도망다닌다.

 동문회,동기회......

 내 이름 석자는 그냥 졸업앨범에 묻어두면 안되겠니?

 몇번을 이사하고 전화번호를 바꾸어도 귀신같이 알고 잘도 찾아온다.

 차라리 빨리 붙잡혀서 감옥에 갇혀 사는 게 나을 법 하다.

 도망다니는 게 더 지옥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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