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세상의 마지막 한 끼[윤의섭]

JOOFEM 2007. 10. 26. 23:24

 

 

 

 

 

 

 

 

 

 세상의 마지막 한 끼 [윤의섭]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언제나 배가 불편한

칠순을 반이나 넘어선 할머니

큰손자며느리가 맹장염으로 입원했기에

점심거리로 혼자 국수를 만든다

냉동실에서 꺼낸 국수가락은 잘게 부서져

어느 한 줄기 긴 가락으로 온전하게 이어진 것 없고

끊어지고 끊어져 수없는 건너뛰기를 해야 했던

할머니 살아온 날들처럼 자잘한 건더기로 익어간다

말국은 거의 따라버리고

이제 남아 있어야 할 아무런 필요없는

그런 헛배 부른 말국은 다 저버리고

점심을 마련하느라 부엌에 서 있는 할머니의 뒷모습

할머니는 여전히 여인이었다

그 한 끼에 살아온 날들을 담아

삶아내는 국수 한 그릇으로

가까이 온 지 벌써 오래된 죽음을 마련하는 것이다

어쩌면 세상에 남은 마지막 한 끼가 지금 만들어지고 있다

숟가락으로 건져내야 간신히 한 입에 채워지는

끊어진 길들 삶아서 삶이 되고 죽음이 되고

지금 국수 한 그릇으로 할머니의 한세상이 다시 마련된다

 

 

 

 

 

 

 

 

 

 

 

* 늙은 부모를 모시는 집은 늘 어쩌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게다.

  어쩌면 이 식사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일천구백팔십삼년 나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보내드려야 했다.

  병원에서 나가라고 할 때 이미 각오를 했지만

  집에서 과일통조림을 드리면서 어쩌면.....이라고 생각했고

  마지막으로 담배 한모금 피우시라고 불을 붙여 드렸다.

  십분도 안되어 배설을 다 하시고 잠이 드셨다.

  그 옆에서 나도 잠간 눈을 붙였는데 어머니가 나를 깨우셨다.

  어쩌면......이라는 불길한 마음이 현실이 되었었다.

  지금도 어머니의 조그만 식사가 어쩌면......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 한 끼가 왜 그리 슬프고 힘겨운지 모르겠다.

  한평생의 그 많은 끼니중에 마지막 한 끼가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기쁨이 되어야 함에도

  우리는 슬픈 마음이 된다.

  애써 통통 튀는 목소리로 어머니와 친구가 되어주는 이 기쁨이, 이 슬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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