交友錄[유종인]
눈이 내렸다
어둠 속에서
말 못할 것들이 흩날렸다
내리는 눈은
친구가 아니라서
바닥에 쌓이거나
행인의 발길에 밟힐 것이다
내리는 눈 속에서
눈을 치우는 사람들이
문밖에 나와 있다
호랑이 한 마리 나타나 울부짖으면
내린 눈들이 화들짝 놀라
하늘 속으로 눈 내리러
다시 올라갈 것만 같았다
친구는, 내려오는 친구는
저렇게 하얗고 속절없이 많아도
다 내가 더럽혀야 할 눈이었다
내리지 않는 눈이
가장 순수한, 착한 눈이었다
친구는
죽은 친구가, 아직 만나지 않은 친구가
제일 좋은 친구다
이미 치워진 눈과
치워진 눈 위에 밤을 새워 내리는 눈과
눈을 뭉치며 달아나는 친구의 뒤통수에 정확히 박히는 눈과
말없이 뒤란 그늘 속으로 숨어드는 눈과 함께
친구는,죽은 친구가 제일 착한 친구였다
* 일방적인 사랑과 우정은 없는 법이다.
기브앤테이크의 법칙이 엄연히 존재하기때문에
언제나 마음을 풀어헤치지 못하고
늘 주는 것과 받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한다.
고등학교 칠십일회 졸업,대학 칠십칠회 졸업,군대 이십이기 등등
이렇게 저렇게 맺어진 친구들이
회비내라, 모임와라,누구 죽었다,여단장됐다,보험들어라,돈 좀 빌려줄래......
정신없이 긴장하게 만들지만
아직 만나지 않은 친구는 좋은 친구이고
죽은 친구는 제일 착한 친구이다.
그들은 지금의 친구들처럼 적어도 긴장하게는 안 만들므로
교우록에 있든 없든 편안함, 그 자체인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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