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내 사랑은[허연]

JOOFEM 2007. 12. 1. 10:41

 

 

 

 

 

 

내 사랑은[허 연] 




  내가 앉은 2층 창으로 지하철 공사 5ㅡ24 공구 건설현
장이 보였고 전화는 오지 않았다. 몰인격한 내가 몰인격

한 당신을 기다린다는 것. 당신을 테두리 안에 집어넣으

려 한다는 것 

  창문이 흔들릴 때마다 나는 내 인생에 반기를 들고 있
는 것들을 생각했다. 불행의 냄새가 나는 것들 하지만 죽

지 않을 정도로만 나를 붙들고 있는 것들 치욕의 내 입맛



  합성인간의 그것처럼 내 사랑은 내 입맛은 어젯밤에
죽도록 사랑하고 오늘 아침엔 죽이고 싶도록 미워지는

것. 살기 같은 것 팔 하나 다리 하나 없이 지겹도록 솟구

치는 것


  불온한 검은 피, 내 사랑은 천국이 아닐 것 





 
* 내가 죽거나 당신이 죽거나. 이렇듯, 극단으로밖에
치달을 수 없는 사랑을 간직한 몰인격한 나를 다만
죽지 않을 정도로만 붙들고 있는 이 삶, 치욕.
내 사랑의 입맛은 맵고 짜고 시고 쓴 것. 어느 하나
달콤한 게 없는 것. 그래, 너무 많은 의미가 되어버린,
내 유일한 아킬레스건인, 유일한 상처인, 유일한 약점인
당신, 당신을 기어코 죽여버리겠다고. 그래야만 내가,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겠다는 이 터무니없는 불안감.
내 사랑은 지옥일 것. 진물이 끈적하게 흘러내리는 벌건
불인두의 자국을 끌어안고 죽음에 이를 때까지 쉴 새 없이
몸부림치는 천형(天刑)일 것. 원죄(原罪)일 것.
-슬픔의바다                                              ---> 나의 국어선생님,바다님이 쓰신 글입니다.

 

 

 

 

* 한 때 결혼식장에 가면 신랑신부에게 축하해 주는 마음이었는데

  요즘은 신랑신부에게, 그래 너 살아봐라 사랑이 얼마나 징그러운가를, 하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죽지 않을 정도의 천형임을...... 

 

**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이 허연 선생님이셨다.

  시인 김관식과 같이 근무한 경험으로 김시인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 주신 분이시다.

  그 분과 이름이 동명이인이어서 혹시 그 선생님이 쓰신걸까, 하며 뒤져보니 이 허연 시인은

  나이가 덜 허연 분이다. 그 허연 허연선생님은 속알머리가 없으셨으므로

  지금도 반짝이는 삶을 살고 계실텐데......

  그러고 보니 학산 조재억선생님도 생각난다.

  대체로 국어선생님은 존경할만한 분이 많다. 내가 어지간해선 존경, 잘 안하는 사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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