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베껴먹다[마경덕]

JOOFEM 2008. 6. 16. 06:59

                                                                     석류[강영균]

 

 

 

 

 

 

베껴먹다[마경덕]  

 

 

 

 

 

  어머니는 할머니를 베껴 먹었고 나는 어머니를 베껴 먹고 내 딸은 나를 베껴 먹는다. 태초에 아담도 하나님을 베껴 먹었다. 아담 갈비뼈에는 하와가 있고 내가 있었다. 지구에 사는 모든 여자들은 하와의 사본이다. 금성 목성 토성 화성… 모두 지구의 유사품이다,

 

  바람개비는 풍차를 국자는 북두칠성을, 너훈아는 나훈아를 슈퍼는 돈 한푼 내지 않고 구멍가게를 베껴먹었다. 귤나무는 탱자나무를 오렌지는 자몽을 베껴 먹고 별은 불가사리를 탁본했지만 한번도 시비에 걸린 적이 없다. 하이힐은 돼지발의 본을 떠서 완성되었다. 복숭아는 개복숭아를 표절하고 드디어 팔자를 폈다. 아직도 개복숭아인 것들은 눈치가 없거나 지능이 떨어진 것들이다.

 

  나는 수년 간 산과 바다를 베껴 먹었다. 그러므로 내 시는 위작이거나 모작이다. 나는 오늘도 늙은 어머니와 맛있는 당신을 즐겁게 베껴먹는다. 

 

 

 

 

 

 

 

 

 

* 어른들은 다 껍데기여서 다 벗겨먹는다. 베껴먹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어머니는 할머니를 벗겨먹었고

나는 어머니를 벗겨먹는다.

아이들은 또 나를 벗겨먹는다.

벗겨먹고, 벗겨먹고, 또 벗겨먹고

그래도 벗겨먹을 게 무궁무진하다.

진이 다 빠지고 죽을 때가 되어서야 벗겨먹을 껍데기가 없음을 안다.

일곱마리 강아지에게 젖을 물리고

포기한 듯 퍼져있는 어미개가 껍데기 같은 마음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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