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균
형이 없는 시대[김광규]
형처럼 믿고 싶은 선배
밤새워 이야기하고 싶은 친구
아들처럼 돌보아주고 싶은 젊은이
옛날에는 있었는데
웃음 섞인 눈길
따뜻한 물 한 모금
옛날에는 있었는데
이제는 모두 돈을 달라고 한다
외상은 안된다고 한다
계산을 끝내고 혼자서
전철이 머리 위로 지나가는 굴다리
시커먼 물방울 떨어지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며
알아듣지 못할 유언을 흘리는 저 사람
낯익은 얼굴 구부정한 어깨
매일 거울 속에서 그를 본다
형이 되어버린 나를 본다
* 우리 집안은 남자형제들도 언니,아우 한다.
그래서 학교에 가서도 선배라고 했지, 형이라고 부르진 않았다.
선배 혹은 형은 영원한 옹달샘이라 배웠고
그래서 늘 사랑을 받기만 했다.
내리사랑의 의미를 그렇게도 해석했었다.
형의 리더십에 아우는 활로우십으로 조용히 따르기만 하면 되었다.
세월이 흐르다보니 나도 한참 형이 되어 있었고
두리번거려도 형이 없는 시대가 되어 있었다.
재작년인가 모처럼 학교 축제에 갔더니
머리 벗겨진 후배가(이 녀석이 마흔다섯인데)
형,하면서 불러서 스낵바에 철퍼덕 주저앉은 적이 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보다 형은 없는 거다.
결국 그 날 후배들이 먹은 모든 식사비용은 형이 계산했다.
그 사이 옹달샘들은 어디로 사라진걸까.
며칠전 카페의 벗이 주페형이라 불러서
얼른 뒷주머니의 지갑을 만지게 되었다. ㅎㅎ
'시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침(同寢) [박목월] (0) | 2008.07.21 |
---|---|
시여[김광규] (0) | 2008.07.15 |
적막(寂寞)한 식욕(食慾) [박목월] (0) | 2008.07.08 |
平日날의 관심[김용범] (0) | 2008.07.06 |
도꾸리蘭[이해리] (0) | 2008.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