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빛 1 [마종기]
내가 죽어서 물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끔 쓸쓸해집니다. 산골짝 도랑물에 섞여 흘러내릴 때, 그 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누가 내 목소리를 알아들을까요. 냇물에 섞인 나는 물이 되었다고 해도 처음에는 깨끗하지 않겠지요. 흐르면서 또 흐르면서, 생전에 지은 죄를 조금씩 씻어내고, 생전에 맺혀 있던 여한도 씻어내고, 외로웠던 저녁, 슬펐던 앙금들을 한 개씩 씻어내다보면, 결국에는 욕심 다 벗은 깨끗한 물이 될까요. 정말 깨끗한 물이 될 수 있다면 그때는 내가 당신을 부르겠습니다. 당신은 그 물 속에 당신을 비춰 보여주세요. 내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주세요. 나는 허황스러운 몸짓을 털어버리고 웃으면서, 당신과 오래 같이 살고 싶었다고 고백하겠습니다. 당신은 그제서야 처음으로 내 온몸과 마음을 함께 가지게 될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송두리째 가진다는 뜻을 알 것 같습니까. 부디 당신은 그 물을 떠서 손도 씻고 목도 축이세요. 당신의 피곤했던 한 세월의 목마름도 조금은 가셔지겠지요. 그러면 나는 당신의 몸 안에서 당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죽어서 물이 된 것이 전연 쓸쓸한 일이 아닌 것을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개별시집『그 나라 하늘빛』, 문학과 지성사, 1991)
ㅡ시집『마종기 시전집』, 문학과 지성사(1999)
* 가끔, 내가 죽어서 육체는 사라지고 영혼만 남았을 때
내가 생전에 사랑했던 영혼을 알아볼 수 있을까가 참 궁금하다.
나의 목소리를 누가 알아들을 것이며 이름없는 나를 어떻게 불러줄 것인가.
그리고 내가 온전히 사랑했던 영혼을 그 영혼의 세계에서도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다만 지금 내가 사랑하는 영혼을 사랑하는 일이 쓸쓸치 않음을 어렴풋이 알 뿐이다.
'시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물1[나태주] (0) | 2008.08.24 |
---|---|
황홀한 고백[이해인] (0) | 2008.08.21 |
견인되다[이수익] (0) | 2008.08.10 |
전어속젓[안도현] (0) | 2008.08.05 |
길일(吉日)[이수익] (0) | 2008.0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