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어속젓[안도현]
날름날름 까불던 바다가 오목거울로 찬찬히 자신을 들
여다보는 곰소만(灣)으로 가을이 왔다 전어떼가 왔다 전
어는 누가 잘라 먹든 구워 먹든 상관하지 않고 몸을 다
내준 뒤에 쓰디쓴 눈송이만한 어둔 내장(內臟) 한 송이를
남겨놓으니 이것으로 담근 젓을 전어속젓이라고 부른다
사랑하는 이여, 사랑에 오랜 근신이 필요하듯이 젓갈 담근
지 석 달 후쯤 뜨거운 흰밥과 함께 먹으면 좋다
* 어설픈 사랑은 내게 쓰디 쓴 것이지만
잘 삭혀서 곰삭으면 뜨거운 흰밥에 얹어먹기 그만이다.
맛난 부분은 어디나 맛나지만
내장같은 것까지 온전히 맛있기는 힘든 법이다.
젓갈 담그듯 기다려주는 게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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