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거미와 이슬 [오봉옥]

JOOFEM 2008. 11. 27. 21:17

 

 

 

 

 

 

 

 

거미와 이슬 [오봉옥]

 

 

 

 


거미의 적은 이슬이다

끈끈이 점액질로 이루어진 집은

이슬의 발바닥이 닿는 순간

스르륵 녹기 시작한다

눅눅해진 거미줄로는

그 무엇도 붙들 수 없어

허공을 베어 먹어야만 한다

 


거미는 숙명적으로

곡마단의 곡예사가 된다

가느다란 줄에 떼지어 매달리는 이슬을

곡예사가 아니고선

다 털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슬의 살은 공처럼 부드럽다

곡예사는 이슬을 발가락 끝으로 통

통 퉁겨보기도 하고

입으로 빨아들여 농구공처럼 톡

톡 내쏘기도 한다

작은 물방울들을 눈덩이처럼 굴려

크게 하나로 만들어놓은 뒤

새총을 쏘듯이 거미줄을 당겼다 놓아

다시금 새하얀 구슬들로 쏟아지게도 한다

 


이슬을 다 걷은 거미는

괜시리 한번 거미줄을 튕겨본다

오늘도 바람이 불면 그물망 한 가닥

기둥처럼 붙들고 흔들릴 것이다

그 뿐인가,

팽팽한 줄이 퍼덕이는 순간

회심의 미소를 짓기도 할 것이다

 

 

 

 

 

* 세상 모든 일은 마치 게임과 같다.

거미가 이슬과 싸워서 이기거나, 지거나,일 것이다.

이겼을 때의 희열을 잊지 못하고 흰 이를 드러내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 건

그것 때문에 생의 의미가 있는 것이어서인지도 모른다.

농구경기에서는 마지막 사쿼터에서 일분을 남겨놓고 머리싸움을 할 때

흥분과 몰입에 빠져든다.

마지막 그물을 가를 때 손맛과 함께 승리의 여신을 만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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