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따개와 뚜껑[장석주]

JOOFEM 2008. 12. 26. 23:03

 

 

 

 

 

따개와 뚜껑[장석주]

 

 

 

 

 

병뚜껑을 여는 일은

실은 병의 목을 따는 것이다.

잘 훈련된 刺客들이

병의 목을 따기 위해 내려온다.

순식간이다, 딱, 하는 신음과 동시에

뚜껑이 몸통에서 떨어지고

몸통의 체액과 비밀의 거품을 뿜어낸다.

이 분리의 순간은

無頭人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풀밭에 함부로 뒹구는

저 금속조각들.

저 뚜껑들이 무두인의 두개골이다.

해결사들은 서둘러 돌아간다.

따개와 뚜껑의 세계는

엽낭게의 사생활과는 다를 것이다.

 

 

 

 

 

* 따개로 뚜껑을 따는 행위는

투우사가 투우의 정수리에 칼을 꽂는 것과 같다.

우리는 그것을 '진실의 순간'이라고 부른다.

살면서 따개로 뚜껑을 열어야 할 순간은 많이 찾아온다.

운명처럼 다가오는 그 순간에 따느냐, 못 따느냐는 순전히 내 몫이고

내 결정이다.

진실의 순간은 그래서 늘 준비하지 않으면 비껴가는 운명이 된다.

 

 

** 군대에서 훈련받을 때 한 친구가 수통의 뚜껑을 잃어버렸다.

구대장에게 분실신고를 하면서

'수통 따꽁을 잃어버렸다,고 보고하였었다.

아마 부산친구였던 것 같은데

그 따꽁이란 사투리가 생각난다.

왠지 따개로 뚜껑을 따면 '따꽁'하고 소리가 날 것만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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