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아름다운 사이[공광규]

JOOFEM 2009. 5. 11. 21:46

 

                                                             북유럽의 여름저녁[리카르드 베리]

 

 

 

 

 

아름다운 사이[공광규]

 

 

 

 

 

 

이쪽 나무와 저쪽 나무가

가지를 뻗어 손을 잡았어요

서로 그늘이 되지 않는 거리에서

잎과 꽃과 열매를 맺는 사이군요

 

서로 아름다운 거리여서

손톱 세워 할퀴는 일도 없겠어요

손목 비틀어 가지를 부러뜨리거나

서로 가두는 감옥이나 무덤이 되는 일도

 

이쪽에서 바람 불면

저쪽 나무가 버텨주는 거리

저쪽 나무가 쓰러질 때

이쪽 나무가 받쳐주는 사이 말이예요

 

 

 

 

 

 

 

* 내가 사는 동네에는 현충사가는 길이 있다.

그다지 길지는 않지만 은행나무가 작은 길 좌우로 서로 마주보며 서서

아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하늘을 가려주고

포근한 마음으로 지나가게 해준다.

서로 마주잡은 손이 정겹게 느껴져서 때로 이 길의 포도를 벗겨내고

흙을 좌악 깔아서 모든 사람들이 맨발로 걷는 길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잎과 꽃과 열매를 맺는 사이라면

아름다운 사이라면 이 길을 걷게 하고 싶다.

 

 

 

차가 다니는 길이라 걷기에는 좀 부담스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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