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인간[권혁웅]
벰 베라 베로를 아시는가? 손가락이 세 개씩, 두 손에
도합 여섯 개밨에 없던 남매, 셋이 가진 걸 다 합쳐도 겨
우 열여덟 개였던 남매, 게다가 맏이는 장님이어서 셋을
모아도 눈동자가 넷뿐이었던 남매,
늘 사람이 되고 싶다고 중얼거리던 이들
돼지엄마네 큰형은 도수 높은 안경알 속에 콩알만한
눈을 끔벅이며 서류철 속에서 살았다 형은 동사무소 9급
주사보, 주민등록등본 호적등본 호적초본 인감증명서 토
지대장 사이를 늘 왕복했다
작은 형은 공장에 나갔는데 프레쓰기가 손가락 둘을 먹
어버렸다 늘 왼손으로만 악수하던 사람, 사귀던 여자가
떠나갔는데 힘센 오른손으로는 잡을 수 없어서 대신에
세 손가락으로 엿을 먹였다고 한다
막내 미정이는 내 쌘드백, 학교 가면서 한 번 오면서 한
번 저녁에 또 한번 미정이는 얻어맞았다 왜 때렸느냐고
묻는다면 쌘드백이 거기 있어서라고 대답할 수 밖에, 나
중에 버스 차장이 되었고 문틀에 끼어 왼손이 너덜너덜
해졌다 오라이라는 거, 쉽지 않은 말이다
요괴인간은 늘 악마, 유령, 좀비, 늑대인간과 싸웠다 적
들의 목록을 간추리는 일은 당신에게 맡기겠다 엄마가
돼지인지 돼지들의 엄마인지도 눈 밝은 당신의 몫이다
다만 내가 어둠의 세력이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사람
이 되는 게 쉬웠으면 그들이 출연할 때마다 노래를 했겠
는가 말이다
* 권혁웅시인은 나보다도 칠년쯤 후배일텐데 어떻게 요괴인간을 알까 궁금하다.
나중에 재방송을 해준 것도 아닐텐데......
대개 세대를 가르는 방법중의 하나가 너 누구 아니?이다.
너 황금박쥐 아니?
너 타이거마스크 아니?
너 박이천 아니? 등등
언젠가 칠공년 개띠에게 박이천을 아니 그랬더니 박이천이 누구예요? 한다.
칠십년대 축구 국가대표선수로 이름을 날리던 선수이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아마 벰 베로 베라,가 아니고 벤 베로 베라일 게다.
왜 그 이름조차 잊어버리지 않는걸까.
어릴 때의 세계가 죽을 때까지 지배한다고 생각되는 건 왜일까.
그러고 보니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요괴인간 투성이다.
사람으로 살고싶다고 중얼거리는 이 천지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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