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의 어떤 나무
크래커[김지녀]
수백 개의 다이너마이트를 준비하고
폭파 전문가들은 콘크리트 벽에 뚫릴 구멍에 대해
토론을 시작했다
지구의 반대편에서
나는 그들과 함께 폭파 직전의 건물을 보고 있다
날씨는 쾌청하고
기온도 적당하다
크래커는 바삭바삭 잘도 부서진다
건물은 아직 그 모습 그대로 담담하게 서 있다
이미 깊고 큰 구멍의 뼈를 가지고
천천히 무너졌을 시간이 늙은 코끼리처럼
도시 한복판에 머물러 있다
까맣고 흰 얼굴들이 차례차례 지나간다
여러 번 크고 작은 눈빛이 오고 간다
벌컥벌컥 물 한 컵을 마시는 동안,
아무렇지 않게 무릎을 꿇어버린
벽과 창문과 바닥이
하늘 높이 솟았다 가볍게 흩어진다
방바닥에는 크래커 부스러기들이 잔뜩
떨어져 있다
저 먼지구름은 이제 곧 이곳을 통과할 것이고
* 크래커와 비스켓의 차이는 잘 부스러진다,와 잘 안부스러진다,이다.
물질에 있어서 취성과 인성의 특성을 각각 가지고 있는 셈이다.
가끔 누가 취성은 뭐고 인성은 뭐예요,라고 물으면 엿을 가지고 설명한다.
추운 겨울날 엿치기할 때 긴 엿가락을 어느 모서리에 툭 치면 톡하고 부러진다.
엿 속에 구멍이 큰 사람이 이기는 거였던가 그랬던 것 같다.
이 때 단단한 엿이 톡 부러지는 것은 취성이 있다고 말한다.
반면에 여름에 똑같이 어느 모서리에 툭 치면 잘 안부서진다.
인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얼핏 보면 단단한 것처럼 보여도 의외로 쉽게 부서지는 물질이 있고
보기엔 연약해 보여도 쉽게 부서지지 않는 물질이 있다.
사람으로 치면 외유내강형이 인성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크래커처럼 살 것인가, 비스켓처럼 살 것인가.
부스러지며 살 것인가, 안부스러지며 살 것인가.
TPO의 법칙처럼 뭐든지 다 쓰임새가 다른 법이니까 다르게 살긴 해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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