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굴[강기원]

JOOFEM 2010. 1. 17. 20:19

 

 

 

 

 

 

굴[강기원]

 

 

 

 

딱딱하고 어두운 동굴 속에서

이제 막 나온 동굴주의자

욕을 모르는 혀처럼 부드러운 너를

오래 다문 내 혓바닥 위에 올려본다

나 또한 고집스러운 동굴주의자이니

나를 맛보듯 너를 맛보련다

달큰하고 비린 젖내

태곳적 양수의 맛

더 거슬러 아비의 깊은 체취

너는 메마른 나의 미뢰를 섬세히 건드린다

바다의 살점을 입에 물고

바늘 돋힌 내 혀를 가만히 대는 동안

씹을 것도 없는 너는

목젖을 타고 미끄러져 들어간다

칙칙하던 내가 바다 향기로 환해진다

너와 나는 닮기도 다르기도 하다

뼈를 밖으로 살을 안으로 한 너와

물컹한 살 속에 딱딱한 뼈를 감춘 나는

누가 더 수줍은 것이냐

너의 타액처럼 끈적이며 산뜻하기란

싑지 않은 일

말 없는 바다의 혓바닥 같은

너를 삼키고 나는 대양을 품는다

아가미로 숨쉬는 바다의 계집이 된다

감은 속눈썹 끝에

긴 수평선이 걸린다

 

 

 

 

 

 

 

 

* 오늘 점심에 굴 순두부찌개를 먹으며 문득 생굴이 먹고 싶어졌다.

대체로 입에서 뭉글거리는 것을 싫어하지만 굴만큼은 예외로 좋아한다.

바다냄새가 나는 굴향기가 혀의 미각을 자극하고도 남는다.

다행히 아이들도 굴을 좋아해서 가끔 굴파티를 하곤 한다.

올해는 특히나 서해안에서 잡히는 굴이 크고 싱싱하다.

작년인지 재작년인지 기름유출사건으로 한동안 굴이 잡히지 않았는데 그래서인지 크기가 더 커졌단다.

굴을 먹을 때 눈의 흰자위가 굴처럼 되지 않는가.

속눈썹 끝에 수평선이 걸린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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