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미스 물고기[김경선]

JOOFEM 2010. 1. 16. 09:48

 

 

 

 

 

 

 

 

미스 물고기[김경선]

 

 

 

 

 

가게 문을 열면 풍경소리가 들린다

아침 일찍 물고기가 운다

수문이 열리고

꼬리를 흔드는 물고기 한 마리

마른 허공에 강물을 풀어 놓고 첨벙 뛰어 오른다

 

수선집 문이 열리고 딸랑딸랑 파문이 인다

주인 보다 먼저 인사를 하는 미스 물고기

그녀의 반경은 10cm

쇠종에 시계추처럼 묶여 헤엄을 친다

노처녀로 늙은 주인 여자의 반경도 5m

여섯 평 가게에 묶여 미싱을 돌리는 미스 김

종일 페달을 밟고 달려도 늘 제자리다

 

어서 오세요 정말 멋져요 딱 맞아요

뻐금뻐끔 그녀의 입에서 물방울이 쏟아진다

종일 그녀는 같은 말을 되풀이 한다

손님이 뜸해지면

오래전 아가미에 가두어둔 강물소리에 젖어 추억에 잠긴다

지지난해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만난 물고기

어느 강물을 거슬러 올랐는지

비늘이 헐었다 쇠종에 매달려 제 몸으로 종을 치는 종지기

그 소리 맑고 구슬프다

 

누가 그녀를 저 곳에 매달았을까

몸값을 지불해도 저주는 풀리지 않는다

어디론가 가고 싶다고

나를 풀어달라고 물고기가 운다

수문을 열고 손님이 들어선다

미스 물고기, 이 때닷!

힘껏 꼬리를 친다

 

 

 

 

 

 

 

 

* 미스 물고기의 반경은 5cm, 늙은 주인 여자는 5m, 미싱 돌리는 미스 김은 여섯 평

인간을 옭아매는 억압은 인간을 작아지게 만든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늘 이 억압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꿈을 가진다.

그러면서도 자유의지가 너무 넘쳐나서 제멋대로일 때 안정의 욕구로 자신을 억압한다.

좁은 문을 통해 세상에 와서 비좁은 관짝으로 돌아가기까지

인간의 자유의지는 늘 꿈틀대고 더 많은 자유를 차지하려고 하고

그래서 질서와 무질서의 세상을 왔다갔다 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해 간다.

대체로 무질서를 꿈꾸는 자유의지가 질서를 욕망하는 억압보다는 크기때문에

세상은 늘 시끄럽고 사고치고 있고

그 가운데 인간은 자유와 평강을 동시에 갈구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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